"사만다와 계속 만날까, 옛 애인 수지와 뜨거운 정열을 다시 한번 불태울까. 수지와 재회한다면 사만다와 보낼 꿈같은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야 할텐데..."

미국 퍼듀대학 "거시경제학 입문" 과정에서 배우는 교과서 내용의 일부다.

이 교과서 제목은 "인생, 사랑 그리고 경제학(life,love&economics)".

워싱턴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건물 앞에 팔짱 낀 남녀가 서 있는 모습을 겉표지로 한 이 교과서는 퍼듀대 경제학과 교수 3명이 공동집필한 신세대 경제학 교과서다.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 일과 자녀양육 과정에서 내리는 각종 결정을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한 책이다.

연애소설과 경제학을 접목한 책인 셈.

요즘 미국에서는 연애소설 추리소설 등의 형식을 동원한 ''경제학 교과서의 소프트화'' 바람이 불고 있다.

각종 그래프와 차트, 복잡한 공식으로 가득찬 경제교과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비효율적이란 비판에 따른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경제학 입문과정을 듣는 대학생 수는 매년 약 1백40만명.

이중 1만7천명만이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에게 복잡한 수학공식이나 딱딱한 개념정리를 가르치는 것보다 ''생활주변의 경제학''을 가르치는게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머레이 울프슨 교수도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는 제목의 추리소설형 거시경제학 교과서를 썼다.

버지니아대의 게네스 엘징가 교수와 산 안토니오의 트리니티대 윌리엄 브레이트 교수는 아예 ''헨리 스피어만 추리소설 시리즈''란 경제학교과서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헨리 스피어만은 가상의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마셜 제본스''라는 필명아래 지금까지 시리즈 3권이 나왔으며 현재 네번째 시리즈를 준비중이다.

이런 흐름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미국경제교육학회의 윌리엄 왈스타드 회장은 "이런 식으로는 경제학을 잘못 배울 소지가 많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태어나서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버린 적은 이번이 처음"(크리스토퍼 오팅어.퍼듀대 4학년), "스피어만 시리즈를 읽고 경제학전공을 결심했다"(마크 도미니크.스탠퍼드대 1학년).

근엄한 보수 경제학자들도 소프트 경제교과서의 효과를 무시하긴 힘들 것 같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