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1백년전에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의 극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구상에 부국이 존재하는 것은 빈국이 있기때문이라며 부국의 착취가 빈국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부국은 더욱 부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는 아직 1백년전의 이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주기적으로 마치 레닌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한다.

지난 7월 오키나와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서도 레닌의 주장이 주의제로 등장했다.

바로 빈국 부채 탕감안이다.

잘 사는 나라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후진국의 어려움과 처지를 걱정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볼 때 지향해야 할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동정이 레닌의 부국 착취론에 따른 강박관념에서 나온다는 것은 유감에 앞서 슬픈 일이다.

21세기의 국제사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멜로 드라마적 동정보다는 좀 더 성숙하고 현실에 맞는 방법론과 효과적인 정책으로 후진국을 도와야 한다.

오키나와 G7정상회담에서 빈국의 부채를 탕감하기로 결정한 것은 장기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깜짝 쇼"에 불과했다.

이는 가난의 근본적 이유와 원인을 생각하지 않은 단순한 발상이다.

사실 빈국이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이유는 선진국들의 지원자금이 실질적으로 재정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기관이나 조직이 아닌 체제유지를 원하는 정권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정권은 국제차관을 국민경제생활 향상에 효과적으로 투자하기 보다는 체제유지,대외군사력 강화,양식에 어긋난 경제적 모험에 탕진했다.

진정으로 선진국이 지구촌 가난을 퇴치하고 싶다면 일시적 부채탕감이 아니라 빈국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 상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를 위해 외교적 선심성 차관 제공에 앞서 채무국이 차용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돕고 감독해야한다.

채무자의 책임도 강조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여신관리가 비록 좀 엄격해 보이긴 해도 선진국의 차관공여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IMF가 지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때 제시한 구제금융조건은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환란 당사국으로선 가혹하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국가는 위기를 극복했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의 97년 외환위기가 G7의 부채탕감같은 단순한 발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도 G7이 특정국가에 차관을 제공할 경우 외교적 호의만을 앞세운채 그 어떤 조건도 달지 않는 특혜를 베풀고 있다.

이는 후진국에 대한 호의와 온정이 아니다.

오히려 후진국으로 하여금 경제개발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선진국은 빈국에 대한 동정의 눈물을 쏟으며 희미한 약속만 하기보다는 과거의 경제역사가 보여준 진리를 교훈삼아 빈국이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규명하고,실질적으로 이들을 도와줘야한다.

선진국과 선발 개도국들은 힘을 합쳐 후진국들에 개방경제 원리에 입각한 경제개발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

독립적인 기업경영,상업의 자유,규제없는 국제교역,계약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법치국가 제도 등이 빈국을 가난으로부터 탈출시킬 수 있는 근본적 방법이다.

세계화는 가난한 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혹자는 세계화가 부국과 빈국의 경제적 격차를 더욱 넓힌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화 자체가 빈국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G7은 이 점을 면밀히 관찰,주지해야 한다.

어떤 민족이나 문명도 문화적 이유로 영원히 빈곤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유교사상이 지배하는 아시아의 경이로운 경제적 성공이나 인도의 도약은 절대적으로 반경제적(anti-economic)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선진 채권국들은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리=강혜구파리특파원hyeku@co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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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기소르망 파리정치대학원 교수가 본지에 보내온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