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미뤄 뒀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데다,세계적 주가하락과 경기둔화현상이 겹치며 경제 각 분야가 저마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건설 유통 자동차 금융 철강 섬유 석유화학 전기전자 반도체 벤처 관광 요식업 및 일반서비스 등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경기하락세를 피부로 느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유독 유흥주점만은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여 종업원을 두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실 수 있는" 룸살롱 등 유흥주점이 최근들어 급증 추세다.

96,97,98년 3년 동안 연평균 3백50여개씩 늘어나던 유흥주점이 지난해엔 2천2백여개나 늘어났고,올해는 3천개 이상 더 늘어나 2만2천개를 헤아릴 전망이다.

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30% 가까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식품위생접객업소로 분류되는 유흥주점 단란주점 일반음식점 제과점 다방 등 중에서 다른 업종은 모두 하락세이거나 답보 상태인데,서비스의 실용 가치가 가장 저급하면서도 오히려 이용비용은 가장 높은 룸살롱만은 폭발적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니 기이한 일이다.

상식적으로나 경제이론으로나 쉽게 납득되지 않는 현상이다.

<>유흥주점 급증에 대한 정부 당국의 설명: 보건복지부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빈부격차 심화에 따라 소비가 양극화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둘째는 단란주점과 다방의 변칙 불법 영업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종래 실질적으로 유흥주점이었던 이들이 룸살롱으로 양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98년 말에서부터 올해 6월말까지 1년반 동안 유흥주점이 3천6백개 가까이 늘은 한편 단란주점은 2천9백개,다방은 7백여개 등 3천6백개 줄어든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소비양극화도 정도 나름이다.

지금 경기가 부진해 거의 모든 사치소비재 소비가 주는 판에 유흥주점만 소비양극화로 늘고 있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또한 단지 단속이 괴로워 영세자본이 매출액의 20%에 해당되는 특별소비세와 6%에 해당되는 교육세를 내고 또 거액의 투자비를 들여 룸살롱으로 전업,영업한다는 것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단란주점과 다방이 변칙 불법 영업을 한 당초 동기가 정식으로 룸살롱을 해서는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단속 강화의 결과는 사업포기이거나 더 은밀한 영업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더 설득력 있는 두 가지 가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 내에는 분명 유흥주점이 번성할 수 있게 해 주는 뭔가 특별한 별도 요인이 존재한다.

이에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 내 부정부패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지만원 소장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국가적 과제가 되면서 빅딜 워크아웃 합병 퇴출 등 기업의 생사가 달린 굵직한 개혁작업이 무더기로 시행되며 사회 전반에 부정부패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로비와 청탁 등 각종 검은 뒷거래가 행해지는 룸살롱 등 유흥주점은 불경기 속에서도 호황을 구가함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둘째는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처럼 "신노예제"가 21세기 들어 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서레이대학교의 케빈 베일리즈 교수는 얼마간의 돈을 꾸어준 뒤 상환 불가능한 고리대금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순진한 사람을 덫에 빠뜨려 노예로 삼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 전형적인 경우가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노예매춘"이다.

특히 태국의 경우 노예매춘으로 인한 외화벌이가 연간 무려 31조원이나 되고,매춘사업에 대한 평균적인 투자수익률이 연간 8~900%나 된다.

물론 병들어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노예는 그대로 폐기처분 된다.

베일리즈 교수가 현대판 노예를 "1회용 인간"이라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노예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매매춘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따라서 수요가 늘어 유흥업소 수는 자연히 늘게 된다.

신동욱 전문위원 shin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