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들의 자금난이 좀처럼 완화되지 않으면서 경제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 자금난 문제는 갑자기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일찍이 그 조짐이 있었는데도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기업의 자금난은 다음과 같은 네가지 견지에서 이미 예견돼 왔다고 본다.

첫째 모 그룹이 5백억원 정도의 단기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면, 이 그룹과 비슷한 재무구조를 가진 중견기업의 단기자금 조달 어려움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둘째 경기가 둔화되는 것을 알고 있는 금융기관이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현상태로 유지하거나 더 늘리기보다 대출한 자금을 회수하려고 할 것은 당연하다.

최근 전경련 상의 한국은행은 기업의 체감경기를 조사해 똑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BIS 지수는 올해 2.4분기 최고였다가 3.4분기에 급격 하락, 99년 3.4분기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대우사태를 통해 이미 수익이 낮더라도 안전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원리를 철저히 배운 금융기관으로선 기업 대출에 더 소극적인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셋째 은행합병을 연내에 마무리하겠다는 정부발표로 인해 각 은행이 합병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BIS 비율을 유리하게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다.

은행들이 BIS 비율을 유리하게 유지하려면 자본금을 늘리거나 위험자산의 비중을 축소하는 것이다.

현재 금융시장의 상황에서 은행들에 가장 쉬운 방법은 위험 가중치가 높은 대출을 축소하는 것이다.

그 대상중 하나가 재무구조가 건전치 못하거나 경기의 충격을 많이 받는 기업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의 산업대출 비중이 높아 금융기관의 대출전략의 변화가 기업의 자금조달에 큰 충격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예금은행의 산업 및 가계에 대한 대출금에서 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외환위기 무렵인 97년9월 72.34%에서 98년, 99년말 각각 72.27%, 68.38%다.

또 비통화 금융기관의 총대출에서 산업대출 비중을 보면 97년 9월 80.15%, 98년, 99년말 각각 78.0%, 73.86%다.

이 지표에서 보면 약간의 감소는 있되 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여전히 월등히 높다.

금융기관의 대출 비중으로 보면 급격한 대출축소는 기업의 자금조달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불황에 직면하게 되면, 이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여신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경기둔화나 은행의 BIS비율 고수로 인한 금융기관의 대출축소가 기업의 부도를 초래한다면 건전한 기업도 그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부는 기업자금난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종금사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종금사에 자금지원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또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견기업 등을 포함, 대기업의 신용위험을 곧 특별 점검해 필요한 경우 주채권은행이 지원케 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사실 기업자금난을 가중시키는 근원은 종금사 문제가 아니라 상호 모순적인 정부정책이다.

기업구조조정 및 기업부채비율 하향조정은 기업의 간접금융 의존비율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외국자본의 참여나 주식시장의 지속적 호황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조건이 전제죄디 않으면 국내 자본에 의존, 단기에 급격히 추진되는 기업구조조정이나 기업 부채비율 하향조정은 은행의 BIS비율 개선을 가져올 수 없다.

따라서 돈을 풀어 기업과 종금사를 지원한다는 정책만으론 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할 수 없다.

결국 현 시점에서 요청되는 것은 모든 것을 동시에 추진하기보다 정책상의 우선 순위를 정해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즉 기업구조조정이나 기업부채비율 하향조정을 우선적으로 시행하고난 뒤 은행 BIS비율개선 및 은행합병은 그 후에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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