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 출범 1년 평가 ]

올초 유럽단일통화 유로화의 출범으로 세계 기축통화경쟁이 본격화됐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유로화는 "약세 통화"로 전락했지만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체제를 달러-유로-엔이라는 삼각체제로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로가치가 연초보다 크게 떨어져 위상에 입지가 줄어들긴 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유로화가 달러의 위상을 뒤흔들 수 있는 국제통화로
발돋움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유로화는 연초 출범때 달러화에 도전할 수 있는 통화라는 찬사와 함께 화려
하게 외환시장에 데뷔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제 1라운드 기축통화경쟁의 결과는 유로화의
판정패다.

국제외환시장의 세력판도는 "엔 > 달러 > 유로"로 치닫고 있다.

유로당 1.17달러 및 1백32.8엔에서 출발했던 유로가치는 현재 "1달러=1유로"
와 "1백엔=1유로" 수준까지 곤두박질쳐 있다.

달러와 엔화에 대해 유로화 가치는 지난 1년간 각각 10% 및 20% 가량
떨어졌다.

이에 따라 기축통화 경쟁에서 유로화는 한발짝 뒤로 밀려나 있다.

그러나 기축통화로서의 유로화 장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올해 유로화표시 채권의 발행액(5천8백88억달러)은 달러표시 채권의 발행
규모(5천8백58억달러)를 앞질렀다.

유럽은 물론 미국 아시아 등의 기업들이 자금마련을 위해 유로시장에 몰려든
것이다.

이는 유로가치는 떨어졌어도 유로화에 대한 외국인의 장기적인 신뢰는
강하다는 뜻이다.

유로채의 성공은 그러나 유로화 약세라는 후유증을 낳았다.

투자자들은 유로가치가 올들어 줄곧 약세를 보이자 유로화 표시채를 서둘러
매각, 이를 달러화로 바꿨다.

이 때문에 유로가치는 더욱 떨어졌다.

이밖에도 유로화 약세 요인들은 많았다.

우선 유럽경제가 순탄치 못했다.

유로랜드의 경제성장률이 3.4분기까지 1%를 밑돌았다.

실업률은 10%선으로 매우 높았다.

유로랜드 경제규모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독일경제가 특히 부진했다.

반면 미국경제는 성장률이 5%대에 이르는 등 경기활황을 지속했다.

이같은 경제 펀더멘털의 차이가 유로약세를 초래했다.

통화가치가 경제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지표라는 점에서 유로화의 약세
는 불가피했다.

유럽기업들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도 유로 약세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 지역 기업들이 M&A를 위해 유로화를 팔고 달러화 등 외화를 대거
사들였다.

M&A 자금 등의 명목으로 올들어 9월까지 유로랜드에서 빠져 나간 자금은
유입된 자금보다 8백67억유로나 많았다.

10월들어 일본 투자자들이 유로화를 집중적으로 팔아치운 것도 유로 약세를
부추겼다.

일본인 투자자들은 지난 7월 유럽경제의 회복을 기대하고 주식과 채권 등
유로화 금융자산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 때문에 7월중 유로당 1.0146달러까지 떨어졌던 유로가치는 10월 중순
유로당 1.0877달러까지 올랐다.

그러나 유럽의 경기회복이 더뎌지고 엔고가 지속되자 일본 투자자들은 지난
11월부터 유로자산을 처분했다.

그 여파로 12월초에는 출범 이후 최저치인 유로당 0.999달러까지 추락했다.

통화정책당국인 유럽중앙은행(ECB)이 사실상 유로약세를 방관한 것도 유로
추락을 가속화시켰다.

회원국간의 잦은 불협화음 역시 유로약세의 요인이었다.

또 지난 3월 발생한 코소보사태 등 경제외적인 돌발변수들도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했다.

유로화 출범 1년은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치 사회 등 경제외적인 측면
까지 가세해 유로화가 약세를 면치 못한 시련의 한 해였다.

그러나 유로약세가 유럽경제 회복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감안하면
21세기 유로화의 앞날은 어둡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 박영태 기자 pyt@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