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대규모회고전을 위해 귀국한 백남준을 만났을 때
솔직히 당황했다.

지나치게 솔직한 건지 모든 게 계산된 행동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회고전을 관람한 뒤 그같은 의문은 사라졌다.

"파우스트" "동대문" "달은 가장 오래된 TV" "TV부처" "TV정원" 등 일련의
작품들은 세계 최고의 비디오아티스트가 지닌 무한한 창의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이후 백남준의 태도와 행동은 오랫동안 해외에 나가 있은데다 다른사람과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백남준은 오늘날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가람이다.

93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한데다 독일 캐피탈지가 선정하는
세계 1백대 작가에서 연속 5위를 차지한 것은 그런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50년간 해외에 살면서 이 정도 이름을 얻었으면 국내에 들어와 여생을
편히 보낼 법도 하건만 그는 "천만에"다.

"외국에 살면서 조국에 애국하면 망한다. 외국에 살려면 그나라에 적극
도전해 그곳 사람들과 싸워 더 우수하게 되는 게 진짜 애국이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금도 그는 국제무대에서 더 유명해지는 게 애국이라 여긴다.

때문에 미국을 떠나지 않고 보다 새로운 작품 창출에 몰두한다.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된 건 일찌기 존 케이지를 만난데다 남들이 안하는
TV라는 매체에 주목하고 작품에 있는돈 없는돈 다 끌어다 쓴 덕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현대예술에선 신이 진선미보다 먼저라고 믿는 것도 그가 안주하지 않는
이유다.

비디오아트 창시자에 만족하지 않고 레이저아트에 눈을 돌린 것도 그 때문
이다.

21세기엔 비디오아트도 낡은 것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20세기가 전자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광자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밀레니엄 첫 초대작가로 선정
돼 레이저아트로 21세기를 열게 됐다.

포스트 비디오아트를 내걸고 그가 선보일 작품은 "천지인".

암흑으로 뒤덮인 세계에 새로운 빛이 등장하는 장면 연출을 위해 최첨단
레이저 기구를 사용하고 미술관 전체에 설치작업을 하는 등 사상 초유의
전시회로 만들겠다 한다.

단 비디오아트보다 훨씬 더 드는 엄청난 비용때문에 고민중이라 한다.

일찌감치 중견이 돼 비슷한 작품을 양산하는 국내작가들에게 편안함을
거부하고 고난을 자초하는 그의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기존의 것을 물어뜯고 소화할수 있는 강한
이빨을 주고 싶다. 예술세계에 평등은 없다. 내게는 감상적인 추억보다
오늘하루의 일이 더 바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