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구조조정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때입니다"

이진순(48)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전임자들과는 다른 일면이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경고성 비판이다.

그래서 연구원 안팎에서 의외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는 거시경제 분야를 대표하는 국책 싱크탱크의 대표로서 지난 한햇동안
경제정책방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에 속한다.

더군다나 현정부들어 힘을 얻고 있는 참여파 경제학자 그룹에서도 목소리가
큰편이다.

이 원장은 지난 3월 취임 이래 "소신 발언"을 자주 해왔다.

국책연구기관도 할말은 한다는걸 보여줬다.

실제로 지난 8월엔 "인플레보다 더 무서운 디플레가 오고 있다"며 정부정책
을 선회시켰다.

한달이 넘도록 청와대와 한국은행을 설득한 끝에 만들어낸 역작이었다.

지난 9월 구조조정 회오리속에서 금융 및 기업개혁이 부실하다며 정부를
향해 포문을 열기도 했다.

이 원장을 만나 올 한해 경제성과를 진단하고 내년 전망을 들어봤다.

-지난 1년간 정부는 외환 환율 금리분야에서 위기관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현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지난 1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제 제2의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는 말끔히 씻었습니다.

단기외채 만기연장과 외환보유고 확충을 통한 외환시장 안정에 최우선
노력을 기울인데 따른 결과죠.

이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이 안정을 회복한 것도 평가받을 만한 일입니다"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과 함께 금융 기업 노동 공공부문 등 4대 구조조정을
추진했습니다.

분야별 구조조정은 잘 되갑니까.

"금융구조조정의 경우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고 부실채권을 해소하는 등
금융정상화를 꾀하기 위한 정책들이 강도높게 추진됐죠.

이에비해 기업구조조정은 당초 기대에 못미치는 점이 있습니다.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조정, 부실계열사정리 등에 있어 아직 성과가
가시화되지 못하고 기업부실이 잠재해 있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지난 7일 정부.재계.금융기관 합동간담회에서 5대그룹 구조조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정부는 채찍은 물론 적절한 당근을 사용해 합의가 성실하게 이행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개입이
"신관치"란 지적이 있는데.

"금융은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큽니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해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엔 원칙적으로
공감합니다.

다만 정부개입엔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죠.

손실분담 원칙을 확립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최근 한국정부와 맺은 8차 의향서에서 금리하락을
허용하고 본원통화 한도도 삭제하는 신축성을 보여줬습니다.

지난해말 고금리 처방을 내세우던 때와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IMF의 고금리 처방은 과연 타당했나요.

"IMF의 초기 고금리 정책은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처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부도 위험 속에서 자본유출을 억제하고 외환시장의 안정시키기
위해 IMF의 고금리정책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죠.

그러나 한국은 금융위기를 맞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한국은 건실한 재정과 낮은 인플레를 자랑하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고금리 긴축정책은 민간부문 부실을 가속화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경기저점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내년 경기사이클은 바닥에서 장기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L자형으로
고착될 것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지표상으론 경기가 바닥에 근접해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서 하반기엔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할
전망입니다.

경기가 U자형 회복을 보일지 아니면 L자형을 유지할 것인지는 현재 추진중
인 구조조정의 신속한 마무리와 경기부양책의 실효성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내수진작에 두고 있습니다.

거품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평가한다면.

"구조조정이 지연된 상태에서 과도한 총수요확대 정책만이 시행될 경우
물가불안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총수요 확대정책은 반드시 강력한 구조개혁을 전제로 여기서
발생하는 디플레 압력을 막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실업은 경제위기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내년 실업자가 2백만명에 육박할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입니다.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은.

"신규 대졸자의 구직활동이 본격화되는 내년초까지 실업률이 높아질 겁니다.

실업고통이 가중되기 전에 고용보험 수혜시기를 앞당겨 실업대책의 체감도
를 높이는 방안이 검토돼야 합니다.

실업대책에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죠.

소극적 사후적 실업대책에서 고용창출을 통한 적극적인 실업예방대책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내년은 외환위기의 상처를 완치하고 21세기에 대비해 성장잠재력을 회복
하는 중요한 고비입니다.

내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어디에 둬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한국경제는 이제 발등의 불을 끈 상태입니다.

아직 여러가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내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게 내년 한국경제
가 당면한 과제입니다.

따라서 내년 경제운영의 최우선 과제는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둬야
합니다.

또 신축적인 금리 및 통화정책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단기적인 금융시장 동요와 경기침체를 막아야 합니다.

강도 높은 재정개혁으로 재정건전도를 최대한 유지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죠"

<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