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개혁작업이 관련법안을 통과시키는 마지막 단계
에서 관계부처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일부부처 장관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보류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부처간의 의견대립이나 이해다툼은 실무자회합 및 차관
회의를 거쳐 조정되고 국무회의 의결은 요식행위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이번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책연구소의 개혁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가만히 있다가 이제와서 근본적인 개혁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부부처들의 잘못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정책연구 및 국책연구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정부예산을 절감하기
위해서도 이번 기회에 국책연구소에 대한 개혁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이 "이 법안은 반드시 필요하니 다음번 국무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키라"고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니 법안이 통과되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이번 보류소동은 산하 연구기관을
잃어 예산 및 인사상의 재량권이 축소된 관계부처의 반발이 얼마나 끈질긴
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국책연구소들이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하나는 이들 연구기관의 수요자인 관련부처들도 똑같이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20여개 연구기관을 거느려온 과학기술부의 존립근거가 흔들린
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중앙부처 관료들이 일상업무중 행정집행 못지않게
정책개발도 중요하다는 점을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이대로 가면 중앙부처
들은 연구기관들이 내놓는 정책방안을 집행하는 하부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반발한 것은 경쟁체제에 대해 생리적인 거부반응을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가지는 연구기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는 점이다. 기획예산위원회에 따르면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위탁기관들은
지난 15일 현재 올해 목표의 46.7%인 3천7백80명을 줄였으며 연말까지는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한다고 직원수만 줄이는
것은 별로 의미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연구결과의 객관성확보 및 효율향상이
훨씬 중요한 과제인데 이점에서 볼때 새 법안은 아직도 개선할 여지가 있다.

한 예로 전체예산의 20~50%에 달하는 정책연구비는 종전처럼 관련부처가
집행하게 된다. 따라서 관련부처가 연구용역 발주를 내세워 연구기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연구결과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자면 중.장기적으로 국책연구소의 민영화 및 완전한 경쟁체제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