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외국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개혁이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으며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외환위기와 함께 들어선 한국의 신정부가 경제개혁과 관련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그같은 주장에는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수많은 개발도상국과 체제전환국들이 지난 수십년간 시장메커니즘을 앞세운
이같은 극단적인 논리때문에 오히려 큰 혼란에 빠지지 않았었는가.

물론 개혁작업이라는 것이 시간을 끌수록 어렵고 따라서 가능한 단기간에
이뤄져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경제개혁과 관련 한국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분명하고 구체적인 개혁프로그램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노사정위원회 등이 그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신인도를 회복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외국인투자자들도 안심하고 한국시장으로 돌아온다"

-대외신인도 회복을 위해선 어떤 정책들을 펼쳐야 하나.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동안 한국에 고금리 등 초긴축정책을 강요했다.

이로 인해 비교적 경영상태가 좋은 기업들도 줄줄이 부도를 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IMF의 최대 실책이었다.

따라서 한국정부의 거시경제초점은 부실기업정리 등 구조조정에서 이제
성장전략쪽으로 전환돼야 한다.

특히 최대 강점인 수출 등을 통해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시장은 매우 냉혹하고 이기적이다.

한국이 아무리 IMF개혁프로그램을 잘 따른다해도 경제회복의 기미가
나타나지 않으면 시장은 언제든지 등을 돌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경제개혁과 관련 한국정부의 역할은.

"정보교환 등 민간기업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정부는 기업만큼 시장상황을 잘 꿰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먼저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대외홍보에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외국인 투자펀드 매니저들은 생각한 것 보다 한국시장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외환위기같은 특수상황에선 CNN 등 세계적인 미디어 등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에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많다.

이들을 적극 활용해 한국의 실상을 세계시장에 제대로 알려야 한다"

-현재와 같은 긴급한 상황에선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빅딜에서는 정부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데.

"지금까지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은 득보다 실이 많았었다.

부정부패가 파고들 여지가 많았기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만큼은 직접 개입보다는 재벌 등 민간기업에 간접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금융거래및 기업경영에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업들 스스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의 개입이 아니더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기업들 사이에 확산돼 가고 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경제개발모델이 필요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신경제모델과 관련한 논란에서 두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신경제모델은 개발도상국에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이제 개발도상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일본식이든 미국식이든 한국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개발모델 자체가
아니다.

지금은 복잡한 시장메커니즘을 한국경제에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또다른 한가지는 무엇인가.

"한 나라의 경제시스템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사회.문화적
요인 등이 얽히고 설켜 형성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세계 각지의 이민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독특한 사회이다.

돈으로 명예 등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등 아시아국가는 전혀 다르다.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없이 섣부른 모방을 한다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굳이 개발모델을 찾는다면 서로 양극을 달리는 일본식과 미국식의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유럽식에서 오히려 배울 점을 많을 듯 하다.

비교적 규모가 적고 개방된 경제시스템이어서 한국적 환경에 맞춰 손질하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지난 수십년간 누려온 고도성장의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 하는가.

향후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내년에는 2%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물론 구조조정이 실패하고 외국인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난 80년대
중남미국가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야 할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론 두자리수의 고도성장은 더이상 없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경험에 비쳐봤을때 일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규모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연평균 8%의 경제성장을 이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에도 연5%의 경제성장률이 적절할
것으로 본다.

물론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전제한 것이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실업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없는가.

"솔직히 묘안(magic)이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개혁의 초점을 성장프로그램을 재빨리 전환시켜
기업부도를 최소화해 더이상의 실직사태를 막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책이다.

또 생산성에 비해 지나치게 높았던 지금까지의 임금구조가 개선된다면
실직사태도 점차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회에 노동시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특정분야의 실용적인 기술과 노하우보다는 전반적인
지식을 중요시해왔다.

과거 한국이 개발도상국일 당시에는 높은 교육수준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선진국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하는 오늘날에는 학위보다는
실질적인 기술과 노하우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

이는 대학교육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기술과 전문지식에 대한 교육시스템을 구축해 재취업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외환위기로 인해 아시아적 가치가 도마위에 올랐다.

"잘은 모르지만 이 또한 역사.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농업사회인 아시아와 수렵사회의 서구는 근본적으로 틀리다.

수렵사회에서는 인간은 생산성과 경쟁력이 떨어져 사회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제거됐다.

한마디로 경제적 생산성이 인간존재의 판단기준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존중하는 경제적 생산성이라는 것도 위 아래질서가 무너져
사회혼란이 심화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게 개인적 생각이다"

< 김수찬 기자 ksch@ >

[[ 후카가와 유키고 교수 약력 ]]

.1959년생
.일본 청산학원대학 경제학부 교수
.미국 예일대 국제경제대학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원 박사과정
.주요저서 : ''한국, 선진국 경제론'' ''한국의 재벌주도형 경제성장'' 등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