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엔 5학년과 6학년생이 많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생각을 가진 휴학생이 늘어나서다.

소나기란 바로 일자리 찾기.

사상 최악이라는 올해 취업전망 때문에 아예 한 해를 건너뛰려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

졸업 후 다른학과 3학년으로 옮기는 전과생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대학은 4년만에 졸업하는 것이란 등식이 깨지고 6년제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올들어 지난 8말월까지 전국 대학에서 휴학한 학생수는 36만1천4백88
명.

지난해 전체(31만2천5백53명)보다도 15%가 많은 5만명 가까운 학생이
연필을 놓았다.

여학생의 경우는 3만2천8백35명이 수업을 중단했다.

작년 전체보다 53%나 많은 수치다.

대학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주요 원인은 취업난이다.

특히 취직이 상대적으로 힘든 인문대생들이 휴학을 하거나 상대나 법대로
과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올초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과로 편입한 H대 김수혁군은 "2년이라는
시간을 손해보는 것은 억울하지만 취업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과나 휴학뿐 아니다.

대학원진학경쟁도 치열하다.

대학원은 일부회사에서 경력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집에서나 친구들에게서 "백수"라는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학생들로서는 매력적인 피난처임에 분명하다.

본격적인 학문탐구의 길이 시작되는 대학원이 취업재수학원쯤으로 전락
하고 있는 것.

그러나 취업난속에서는 전과나 대학원진학의 혜택도 일부 일류대생들에
한정된 이야기다.

중하위권대학의 학생들은 전과나 진학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게 편입학이다.

지방 J대에 다니며 편입학시험공부를 한다는 김지희양은 "기업들이 학교를
보고 점수를 매기니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대학속에서 대학입시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전과나 대학원진학보다는 좀더 실리적 불황기를 피하기도 한다.

단기 해외유학이 그것.

사람을 구하는 회사치고 요즘 외국어능력을 강조하지 않는 곳은 없다.

학생들은 어학실력도 키우고 취업의 기회도 기다리자는 생각에 주저함없이
바다를 건넌다.

"꼭 영어실력이 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입사원서에 연수를 다녀왔다
는 말을 쓰면 유리하겠지요".

지난해 휴학을 하고 미국에 영어연수를 다녀왔다는 박형수(K대 경제학과
4년)군은 취업시험에서 한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비행기를 탔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은 이처럼 취업전쟁터로 변했다.

강의실은 텅텅비고 취업정보센터는 미어터진다.

거대한 서바이벌 게임장이나 마찬가지다.

취업을 위한 학생들의 각종 전략도 쏟아져 나온다.

대학 5학년과 6학년도 절박한 상황속에서 나온 고육지책임에 분명하다.

불황기의 취업준비생은 대학생이면서도 입시를 치러야 하는 처지에까지
몰렸다.

당당한 사회초년생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고3"아닌 "고3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조주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