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가 우리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다음 부도는 어느기업이냐는
식의 불안감마저 번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경기침체와 대기업의 부도사태로 심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는 기업들이
마지막 자구책으로 잇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화의를
선청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의란 파산위기에 몰렸으나 위기만 넘기면 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이 법원의
중재아래 채권자들과 채무변제방법(화의 조건)에 대한 동의를 받은 다음
법원의 감독없이 독자적인 기업경영권을 행사, 기업도 살리고 채무도 변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7월24일 법원이 주택건설업체인 (주)동신에 대해 화의인가결정을
내린 이후 기아자동차협력업체 3개사가 서울지법에 화의를 신청한 것을
비롯 출판업체인 (주)고려원 등 9개사가 화의를 신청했고 앞으로 화의신청
기업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한햇동안 화의신청 회사가 2개사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가
아닐수 없다.

부실기업들의 화의신청 급증은 무엇 때문인가.

화의인가결정을 받게 되면 법정관리와는 달리 경영주가 경영권을 계속
행사할수 있다는 매력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법원이 법정관리신청 기업체에 대한 심사기준을 대폭 강화, 사회
경제적 영향이 크지 않은 기업들에 대해서 법정관리를 기각하는 대신 화의를
유도키로 방침을 정한바 있다.

이에 따라 은행감독원은 은행들이 거래 기업체의 화의동의여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설정토록 했다.

은행들이 그동안 화의동의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갱생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경우 법정관리를 거쳐 회사경영이 정상화되면 대출금을 모두 변제받을수
있으나 무리하게 화의를 시키면 해당기업의 경영권만 돌려줄뿐 돈을 회수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우리는 법정관리 또는 화의 어느쪽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따지자는게 아니다.

그건 사후약방문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기업은 파산위기에 몰리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부도가 났거나 부도유예를 받은 기업은 물론 외견상 정상적인 것같아
보이는 기업도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국제경쟁은 치열해지고 있고 기업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버틸수 없다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경쟁력을 스스로 잠식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기업이 쓰러질 지경에 이르게 되면 노사가 뼈를 깎는 각오로 노력한다고
한다.

휴일도 마다않고 특근을 한다거나 상여금반납, 임금동결 이야기도 나온다.

회사가 무너지는 판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회사가 무너질걸 미리 예상하지 못했는가.

화의, 법정관리 어느것도 바람직한게 아니다.

기업이 환경변화에 적응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경우 뻔한
상황전개를 예상하지 못하고 경쟁력 약화를 자초해온 것이다.

이런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