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그리스 신화에는 반은 사람, 반은 짐승의 모습을 가진 고르곤이라는
신이 나온다.

둥글고 기괴한 얼굴에는 수염이 나고 머리카락은 뱀, 몸체는 멧돼지,
손은 청동인데다 눈은 항상 부릅뜨고 있다.

크게 찢어진 입에서는 웃을 때 기다란 혀가 나오고 사자코를 가지고
있다.

드러누울 때는 가랑이를 벌이고 때론 암말의 하반신이 되기도 했다.

생각만해도 등골이 오싹해 지는 고르곤의 모습은 코르프섬 아르테미스
신전의 조각에 새겨진 것이다.

이처럼 반은 사람,반은 짐승의 모습을 가진 생물은 현상세계에 존재할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상상의 세계에서는 묘사될수 있는 존재일뿐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첨단의학의 눈부신 발달은 그런 기존관념의 틀을 벗어나게
하는데까지 이르는 감이 없지 않다.

지난 15일 인도에서 사상 최초로 일반 돼지의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은 고르곤과 같은 짜집기 인간이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유추를 하게 한다.

아직은 환자의 고장난 심장을 떼어내지 않고 돼지 심장을 나란히 이식해
기능을 하게 하고 있는 마당이지만 환자의 조직이 이식된 돼지심장의
기능을 받아들여 원래의 심장을 떼어낼수 있게 된다면 그 유추는 맞아
떨어질 것이다.

90년대 초반에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사람의 유전자를
돼지에게 이식시켜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돼지를 태어나게 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그 돼지의 심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하는데도 개가를 올린바 있다.

이제는 그것을 사람에게 임상실험을 해도 좋을 단계에 와 있다.

인간의 고장난 심장을 교체하기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1957년 미국의 클리블랜드 크리닉에서는 인공심장을 처음 만들어
63년부터 임상실험을 했다.

그러나 그것의 인체이식 최장기록이 620일밖에 안되자 미국 식품의약국
(FDA)은 판매를 금지시키고 말았다.

인간심장 이식수술은 1967년 12월3일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그루트
슈어병원에서 크리스티안 바너드박사에 의해 행해졌다.

그뒤 오늘날엔 그 수술의 성공율이 높아지면서 아주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자 심장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게 되었다.

이번의 돼지심장 인간이식 성공이 별종인간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할수도 있겠으나 수많은 심장병 환자들에게 이식심장부족을
타개해줄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여간 반가운 일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