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논란속에 어렵사리 마련된 공정거래법개정안이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다.

이미 국무회의의결을 거쳐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된 공정거래법개정안은
법안마련을 위한 의견수렴과정에서 채무보증철폐등 굵직한 현안들이
당초안보다 완화되거나 철폐되는등의 우여곡절을 거친 것이어서 그 내용이
잘알려진 것들이다.

그럼에도 또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의견수렴과정에서는 없었던
사업부제 규제문제가 새롭게 불거졌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정부안을 최종확정하는 과정에서 기업결합이나 경제력집중억제
규정을 회피하기위한 탈법행위의 구체적유형및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15조2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시행령에서 사업부제를 탈법행위의 유형에 포함시켜
규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조항이 뒤늦게 신설된데 대해 일부에서는 현대그룹이 인천제철의
사업부형태로 제철업에 진출할지도 모를것에대비, 그걸 막기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가하면 중소기업관련기관에서 요청했다는 당국자들의 설명도 있다.

배경이야 어디에 있건 기업경영혁신의 보편적 기법으로 활용되고있는
제도를 법률로 막겠다는 발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구체적내용을 규정할 시행령은 아직 성안되지않은 상황이기때문에 두고
봐야할 일이긴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기업경영의 내부적 조직행태에 까지
법률이 개입하려는것은 옳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설명가능하다.

우선 그것은 법정신에 어긋나는 규제행위이다.

사업부제를 통한 신규사업참여를 제한하는것은 시장경제원리의 핵인
경쟁효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나다름없다.

신규진입촉진을 통해 독과점구조를 시정하는 것이 법정사의 하나라고
한다면 분명 역행하는 처사다.

다음은 발생하지도 않은 폐해의 개연성을 바탕으로 기업활동을
규제하려는 것은 지나친 행정권의 남용이다.

사업부제를 탈법행위의 하나로 보려는 것은 부당내부거래가 이뤄진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대기업그룹들의 부당내부거래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빈대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수는 없는 일이다.

또 부당내부거래는 현행규정으로 이미 금지돼있고 처벌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는 불필요한 2중규제로 볼수밖에 없다.

이같은 규제는 결과적으로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창의적
능동적인 경영혁신노력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그런데까지 시시콜콜 간여하는 것은 아무리봐도 정부가 할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규제완화를 지상의 명령처럼 떠들면서 또다른 규제의 올가미를 슬그머니
신설하는 것은 앞뒤가 틀린다.

사실 이미 확정된 공정거래법개정안의 다른 내용들도 운용여하에
따라서는 불필요하게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규제요소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독점규제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독점방지나 공정경쟁
유도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경제력집중완화라는 재벌규제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있다.

경제력집중의 폐해를 시정해야하는 당위성도 있지만 경제력집중이
곧 독점과 불공정행위의 원인이라는 등식은 곤란하다.

어떤 경우이든 공정거래법이 기업활동의 자율과 창의를 저해하는
규제법으로 둔갑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공정거래법의 법정신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것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