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하를 놓고 ‘시계 제로’ 상황에 빠졌다.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향한 ‘라스트 마일’(목표에 도달하기 전 최종 구간)에서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유지하는 가운데 서비스업에 이어 제조업 물가까지 꿈틀대면서 현재의 고금리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성수기 앞두고 꿈틀대는 물가

美, 연내 피벗 물거품 우려…물류비 뛰고 제조업 물가 들썩
23일(현지시간) S&P글로벌은 5월 미국 제조업·서비스업을 포괄한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4.4로 지난달 51.1에서 3포인트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2년 4월 이후 25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며, 전문가 전망치(51.3)를 크게 웃돌았다. PMI는 기업들의 판매, 고용, 재고와 가격 추이를 분석한 지수로 50 이상이면 경기가 확장 국면이라는 얘기다.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등 전반적인 물가 오름세가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는 게 S&P의 분석이다. 크리스 윌리엄슨 S&P글로벌 수석비즈니스 경제학자는 “주요 인플레이션 동력이 이제 서비스보다 제조업에서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물류비용도 급상승하고 있다. 미국 CNBC 방송에 따르면 홍해 통항이 어려워진 데다 악천후로 운항 차질까지 빚어지며 동북아시아에서 미국 서부까지 대형 컨테이너(40ft) 운임이 지난달 말 3290달러에서 이달 4610달러로, 동부까지는 4170달러에서 5730달러로 치솟았다. 컨테이너 운임 분석업체 제네타의 에밀리 스타우스뵐 선임해운 애널리스트는 “현물 해상운송 비용은 올초 홍해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의 수준을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부각되면서 미국 채권 가격은 떨어졌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이날 한때 연 4.49%대까지 상승(채권 가격 하락)했고, 2년 만기 수익률도 전일 대비 0.08%포인트 이상 높은 연 4.95%대로 올랐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나와

긴축 통화정책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Fed 인사들의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래피얼 보스틱 미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학생들과의 토론에서 “정책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훨씬 약해졌다”며 “이 때문에 (고금리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이탈리아를 방문한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식료품과 임대료 등 생활비가 큰 폭 상승한 것이 많은 미국민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높아 젊은이들이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전날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제로 컷’(금리 인하하지 않음)을 예상한다”며 “더 끈적끈적하게 고착화된 인플레이션 상황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사람들의 예상보다 더 크다”고 분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다음달 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확률은 1.3%로 집계됐다.

○너무 많이 풀린 달러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과도하게 풀린 달러화 유동성이 해소되기 전에는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채권왕’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CEO는 한 방송에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할 때 "통화량(M2)이 7조달러 이상 늘어났고 M2가 차트를 벗어났다(평균선을 넘어 극도로 증가했다)”며 “(Fed가 국채 보유를 줄여) 통화량을 줄이려고 노력하는데도 아직 불황이 오지 않는 것은 지금도 돈이 너무 많이 흘러넘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Fed에 따르면 지속적인 국채 보유량 축소에도 미국의 통화량은 지난 6개월 동안 5000억달러 이상 늘었다. 지난해 10월 말 20조5531억달러이던 통화량은 올 4월 초 21조1264억달러로 6개월 만에 약 3%(5733억달러) 증가했다.

이현일/김세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