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인터뷰]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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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은 7년째 "앉아서" 현장을 뛰고 있다.
지난 89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그는 이듬해인 90년 "휠체어 경영"으로
재기했다.
93년부터는 한 해 2백일 이상씩 해외 출장을 다니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올해는 작년에 해외에서 묵었던 날(2백24일)보다 더 많이 출장을
다니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꿈과 신념을 강조하는 덕분인지 그는 지난달 27일 희수(77세)를 맞고
지난 18일엔 한국경영학회로부터 경영자대상을 받았다.
사업면에서도 정회장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정부에 "한국중공업 반환 청원서"를 내는가하면 LNG(액화천연가스)선
수주를 당면 목표로 뛰고 있다.
한라가 과연 한중 창원 공장을 반환받을 수 있을까, LNG선을 수주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들을 풀어보기 위해 유화선 부국장대우 산업1부장이 정회장을
만나봤다.
건강이 좋아졌다는 정회장은 이전보다 훨씬 명료해진 어조로 대회전을
앞둔 수장의 심정을 털어놨다.
======================================================================
-희수연을 가진데 이어 한국경영학회로부터 경영자대상도 받으셨고....
겹경사를 뒤늦게마나 축하드립니다. 요즘 건강은 어떻습니까.
<>정인영 회장=고맙습니다. 몸은 아직 좌반신경 마비상태라 불편합니다.
과로하다 뇌세포가 부서졌기 때문이죠.그래도 전반적으론 괜찮습니다.
89년에 미국서 치료받을 때 주치의가 정밀 검사를 하더니 이런 말을
했어요.
"정회장 엔진(심장)은 정말 깨끗하다"고요.
아마 술 담배를 안한 덕분이겠죠. 엔진이 좋아 합병증 염려도 없다고
했어요. 그말을 믿고 해외출장을 다니고 있는겁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걸 빗대 재계에서는 정회장을 "휠체어의 부도옹"
"인간기관차" 등으로 부릅니다.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났다는 뜻이겠죠.
<>정회장=글쎄, 아직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까 역경이 계속되는 것으로
봐야겠지요.
넘어져 다시 일어나긴 했어도 완전히 다 일어서진 못했으니까요.
-해외 출장 다니실 때 힘들지 않습니까.
<>정회장=웬걸요. 비행기타고 내리는 것이 제일 고역입니다.
선진국은 그래도 괜찮지만 후진국에 가면 계단이 많아 아주 힘듭니다.
특히 러시아는 형편없습니다.
비행기에 좌석벨트도 없어 뜰 때 내릴 때 밀리고 해서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작년에도 1년중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내셨던데요, 올해는 어떻습니까.
<>정회장=아마 더 늘어날 것입니다. 갈 데가 너무 많거든요.
미국도 3번은 더 가야 되고 시간이 나면 중국에도 몇번 들러야 하는데
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출장을 다니면서 느끼신게 많을텐데요, 해외 투자지로는 후진국과
선진국중 어디가 낫습니까.
<>정회장=선진국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은 정치 사회가
안정돼 있어 모든게 예측 가능합니다. 배울 것도 많고요.
반면 후진국은 사회가 불안하고 치안이 나쁜데다 예측 가능한 경영도
힘듭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후진국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저임금
이라서....
<>정회장=그냥 임금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우리 임금이 너무 올라가 미국 일본 유럽보다 비싸진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따져보면 후진국 임금이 싼 것만도 아닙니다.
생산성과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사업이 불안하고 성공에 위협도
느끼고요.
-해외출장때는 국왕이나 대통령등 각국 정상들과도 자주 만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상들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정회장=사업가가 만나는 것이니 사업 얘기를 많이 할 밖에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실제로 사업에 도움이 됩니까.
<>정회장=사업할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사실이지요.
-한라그룹은 사업 의향서 교환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의향서라는게
말 그대로 의향에 그치고 실행될 확률이 적은 것 아닙니까.
<>정회장=그렇진 않아요.
의향서란 조건이 붙는 것이죠.피차 사업성을 검토해보고 좋으면
하는 것이라 되는 경우도 많아요.
-회장께서 교환한 의향서중 몇 퍼센트나 성사됐나요.
<>정회장=반이상 됐습니다.
-해외사업도 중요하지만 회장께선 얼마전엔가, 통상산업부에
한국중공업을 돌려달라는 청원서를 낼 정도로 한중에 대한 집념이
강하시다지요. 한중 영동사옥 반환 청구 소송에서 현대가 승소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정회장=영동사옥건은 현대와 한중간의 문제이니 왈가왈부할게 아닙니다.
우린 다만 창원 공장을 돌려달라는 겁니다.
-한중을 돌려달라는 근본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정회장=원래 목적대로 중공업을 더욱 잘하기 위해섭니다.
-정부가 돌려주리라 생각합니까.
<>정회장=정부가 역사 바로잡기를 했는데 그런 사고방식과 논리라면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고 봅니다.
당시 정부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현대양행(현 한중) 채권 포기각서에
강압적으로 서명토록해 회사를 빼앗아간 거니까 다시 원주인한테
돌려주는게 마땅한 것 아닙니까.
현대양행은 한라그룹의 모태임이 분명하고 현재 한중 임직원의 상당수가
현대양행 출신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연고권을 갖고 있는데 돌려주지 않을 명분이 없겠지요.
-왜 뺏긴겁니까.
<>정회장=산업구조 조정이라는 명분을 붙여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기분대로
아무렇게나 한 것입니다.
기업체를 아무나 그저 마음 맞는 사람한테 주곤 했잖아요.
-그래도 정부가 한중을 한라에게 돌려주지 않고 공개입찰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회장=두고 봐야 알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돌려받을 생각입니다.
-한라그룹은 또 LNG선 발주문제와 관련해서도 뉴스를 많이 타고 있습니다.
한라중공업이 자격시비에 휘말리는등 된다 안된다 말들이 많던데요.
<>정회장=정말 피해가 많습니다. 우리는 아주 최신식 설비를 갖춘
삼호조선소를 만들어놨습니다. LNG선보다 더한 배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조선소를 정부가 비비꼬아 꽈배기를 만들어놔 버렸어요.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죠.
-한라입장에서 보면 LNG선을 수주하려면 해운회사와 짝짓기하는게
더 문제 아닙니까.
<>정회장=처음부터 입찰이 된다고 했으면 문제가 없는 건데 시비를
걸어오는 바람에 ....국내 사업도 그렇지만 해외사업에서 정말 피해가
큽니다.
오만과 카타르로부터 건조 실적만 있으면 한라에게 LNG선을 대량
발주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놨는데 한사장 말때문에(한갑수 가스공사사장의
한라중공업 입찰 부적격 발언) 짝짓기를 시도해보겠지만 시기적으로 늦은
것같아 걱정입니다.
-밖에서 보기엔 한라와 현대는 형제그룹이니 현대상선과 손잡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드는데요. 현대상선은 2척까지 수주할 수
있게 돼 있잖습니까.
<>정회장=현대 입장은 지금 모르겠어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겠지요. 알아봐야죠.
-현대 얘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한라는 현대의 도움으로 이렇게 i
성장하지 않았느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회장=특별히 이렇다 하게 도움받은 것 없습니다.
-그러면 한라가 현대에 도움을 준 것도 없었나요.
<>정회장=도움을 받은 것도 도움을 준 것도 없어요.
-최첨단 조선소도 지었고 한데....앞으로 필생의 역점 사업으로 구상
하고 있는게 또 있습니까.
<>정회장=원래대로 중공업입니다. 처음 맘먹었던대로 밀고 나가 아주
활발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 다음 에너지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발전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이
그런 분야지요. 중공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한 분야거든요.
-국제전화사업 참여도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정회장=중공업을 위해서뿐 아니라 그룹 전체를 위해섭니다.
통신 사업은 그룹 전체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거든요.
-현장 경영을 늘 강조하신다면서요.
<>정회장=확인 경영을 위해서지요.
간부와 직원들이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나를 먼저 확인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업태를 파악하고 생산성도 봅니다.
생산성으로 말한다면 통상산업부가 100ppm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우리
공장중엔 이미 이미 50ppm을 달성한데가 있지요.
강원도 문막에 있는 만도기계 공장이 그래요.
이 공장은 내후년초쯤 되면 30ppm까지 갈 겁니다.
그런 변화와 성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면 현장에 가야죠.
-현장에 가면 이 공장은 참 잘되고 있구나 하고 직감적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요.
<>정회장=그럼요. 분위기만 보면 실태를 금방 알 수 있어요.
질서가 잘 잡혀있고 깨끗하면 잘 돌아가는 공장에 틀림 없습니다.
모름지기 회사는 깨끗해야합니다.
-경험해본 사업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정회장=얼른 생각 안나는데....역시 창원공장(현 한중) 건립입니다.
그때가 70년대말이었으니까 당시만해도 자금이나 기술교류가 무척
어려웠던 상황이었죠. 그걸 다 해놓고 보니 쾌감을 느낄 수 밖에.
1백30만평 땅에 공장을 짓는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압니까.
지금도 그때 고생한 사원들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맡은 일들을 정말
열심히 잘 해주었지요.
-반대로 가장 괴로왔던 때는 언제입니까.
<>정회장=그것 역시 한국중공업을 빼앗겼을 때지요.
-지난번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때 30대그룹 총수로서는 유일하게
제외되셨지요.
<>정회장=원래 그런 건 제 성격에 맞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비굴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렇게 돈 갖다주러 가서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운 생각이 들고요그럴
시간이 있으면 공장에 가서 생산라인 한 번 더보는게 낫지요.
그리고 그때 80년대 초 상황이 내가 매달 재판을 받고 하던 때라 줄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회장께선 또 공부하는 기업인으로도 정평이 나있지요.
<>정회장=그냥 차안에서 라디오 듣고 정보 얻는거죠. 여행 다니면서 신문
잡지도 자주 봅니다.
신문 경제면을 다 읽어요. 그게 다 정보 아닙니까.
-아무래도 연로하시니까 세간에선 한라의 후계구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정회장=어슴푸레하게 정리해두고 있지요.
-어슴푸레하게나마 말씀해주시지요. 차남인 정몽원 부회장이 젊은
경영인으로서 잘 하고 있다면서요.
<>정회장=그것도 연결이 되겠지요. (부회장이) 잘 해줬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형제분들, 특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는 자주 연락하고
만나십니까.
<>정회장=피차 바빠서 자주 못 만나지요. 집안 제사나 일이 있을 때
보는 정돕니다.
-앞으로 개인적인 소망이 있으시다면.
<>정회장=내 병을 당장 다 낫게 해주면 좋겠어요.
-사업에서는....
<>정회장=정부가 풀건 다 풀어주면 좋겠어요.
-정부의 규제가 많다는 말씀이군요.
<>정회장=내 생각엔 문민 정부가 들어서고나서 정치도 안정되고 경제도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로 좋아져 국민들 사기가 많이 오른 것 같아요.
그러나 정부의 규제는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많이 풀었다고 하지만 이렇다하게 느낄 수가 없어요.
요즘 내놓고 있는 대기업 정책도 더 묶는 쪽으로 가는 것만 같습니다.
-후배 기업인이나 젊은 경영자들을 위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정회장=우선 경영자는 품행이 단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업을하건 국가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을 해야하고요.
주위에 폐를 끼쳐서도 절대 안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사내나 주위 모든 사람들과 항상 좋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여행하다 읽은 책중에 이런 격언이 있었어요.
"There is no luxury than peace of mind"란 말입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5만달러가 아니라 5천억달러가 있으면
뭘 하겠습니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야 사업도 잘 됩니다.
< 정리 = 심상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0일자).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은 7년째 "앉아서" 현장을 뛰고 있다.
지난 89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그는 이듬해인 90년 "휠체어 경영"으로
재기했다.
93년부터는 한 해 2백일 이상씩 해외 출장을 다니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올해는 작년에 해외에서 묵었던 날(2백24일)보다 더 많이 출장을
다니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꿈과 신념을 강조하는 덕분인지 그는 지난달 27일 희수(77세)를 맞고
지난 18일엔 한국경영학회로부터 경영자대상을 받았다.
사업면에서도 정회장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정부에 "한국중공업 반환 청원서"를 내는가하면 LNG(액화천연가스)선
수주를 당면 목표로 뛰고 있다.
한라가 과연 한중 창원 공장을 반환받을 수 있을까, LNG선을 수주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들을 풀어보기 위해 유화선 부국장대우 산업1부장이 정회장을
만나봤다.
건강이 좋아졌다는 정회장은 이전보다 훨씬 명료해진 어조로 대회전을
앞둔 수장의 심정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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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연을 가진데 이어 한국경영학회로부터 경영자대상도 받으셨고....
겹경사를 뒤늦게마나 축하드립니다. 요즘 건강은 어떻습니까.
<>정인영 회장=고맙습니다. 몸은 아직 좌반신경 마비상태라 불편합니다.
과로하다 뇌세포가 부서졌기 때문이죠.그래도 전반적으론 괜찮습니다.
89년에 미국서 치료받을 때 주치의가 정밀 검사를 하더니 이런 말을
했어요.
"정회장 엔진(심장)은 정말 깨끗하다"고요.
아마 술 담배를 안한 덕분이겠죠. 엔진이 좋아 합병증 염려도 없다고
했어요. 그말을 믿고 해외출장을 다니고 있는겁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걸 빗대 재계에서는 정회장을 "휠체어의 부도옹"
"인간기관차" 등으로 부릅니다.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났다는 뜻이겠죠.
<>정회장=글쎄, 아직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까 역경이 계속되는 것으로
봐야겠지요.
넘어져 다시 일어나긴 했어도 완전히 다 일어서진 못했으니까요.
-해외 출장 다니실 때 힘들지 않습니까.
<>정회장=웬걸요. 비행기타고 내리는 것이 제일 고역입니다.
선진국은 그래도 괜찮지만 후진국에 가면 계단이 많아 아주 힘듭니다.
특히 러시아는 형편없습니다.
비행기에 좌석벨트도 없어 뜰 때 내릴 때 밀리고 해서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작년에도 1년중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내셨던데요, 올해는 어떻습니까.
<>정회장=아마 더 늘어날 것입니다. 갈 데가 너무 많거든요.
미국도 3번은 더 가야 되고 시간이 나면 중국에도 몇번 들러야 하는데
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출장을 다니면서 느끼신게 많을텐데요, 해외 투자지로는 후진국과
선진국중 어디가 낫습니까.
<>정회장=선진국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은 정치 사회가
안정돼 있어 모든게 예측 가능합니다. 배울 것도 많고요.
반면 후진국은 사회가 불안하고 치안이 나쁜데다 예측 가능한 경영도
힘듭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후진국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저임금
이라서....
<>정회장=그냥 임금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우리 임금이 너무 올라가 미국 일본 유럽보다 비싸진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따져보면 후진국 임금이 싼 것만도 아닙니다.
생산성과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사업이 불안하고 성공에 위협도
느끼고요.
-해외출장때는 국왕이나 대통령등 각국 정상들과도 자주 만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상들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정회장=사업가가 만나는 것이니 사업 얘기를 많이 할 밖에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실제로 사업에 도움이 됩니까.
<>정회장=사업할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사실이지요.
-한라그룹은 사업 의향서 교환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의향서라는게
말 그대로 의향에 그치고 실행될 확률이 적은 것 아닙니까.
<>정회장=그렇진 않아요.
의향서란 조건이 붙는 것이죠.피차 사업성을 검토해보고 좋으면
하는 것이라 되는 경우도 많아요.
-회장께서 교환한 의향서중 몇 퍼센트나 성사됐나요.
<>정회장=반이상 됐습니다.
-해외사업도 중요하지만 회장께선 얼마전엔가, 통상산업부에
한국중공업을 돌려달라는 청원서를 낼 정도로 한중에 대한 집념이
강하시다지요. 한중 영동사옥 반환 청구 소송에서 현대가 승소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정회장=영동사옥건은 현대와 한중간의 문제이니 왈가왈부할게 아닙니다.
우린 다만 창원 공장을 돌려달라는 겁니다.
-한중을 돌려달라는 근본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정회장=원래 목적대로 중공업을 더욱 잘하기 위해섭니다.
-정부가 돌려주리라 생각합니까.
<>정회장=정부가 역사 바로잡기를 했는데 그런 사고방식과 논리라면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고 봅니다.
당시 정부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현대양행(현 한중) 채권 포기각서에
강압적으로 서명토록해 회사를 빼앗아간 거니까 다시 원주인한테
돌려주는게 마땅한 것 아닙니까.
현대양행은 한라그룹의 모태임이 분명하고 현재 한중 임직원의 상당수가
현대양행 출신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연고권을 갖고 있는데 돌려주지 않을 명분이 없겠지요.
-왜 뺏긴겁니까.
<>정회장=산업구조 조정이라는 명분을 붙여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기분대로
아무렇게나 한 것입니다.
기업체를 아무나 그저 마음 맞는 사람한테 주곤 했잖아요.
-그래도 정부가 한중을 한라에게 돌려주지 않고 공개입찰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회장=두고 봐야 알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돌려받을 생각입니다.
-한라그룹은 또 LNG선 발주문제와 관련해서도 뉴스를 많이 타고 있습니다.
한라중공업이 자격시비에 휘말리는등 된다 안된다 말들이 많던데요.
<>정회장=정말 피해가 많습니다. 우리는 아주 최신식 설비를 갖춘
삼호조선소를 만들어놨습니다. LNG선보다 더한 배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조선소를 정부가 비비꼬아 꽈배기를 만들어놔 버렸어요.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죠.
-한라입장에서 보면 LNG선을 수주하려면 해운회사와 짝짓기하는게
더 문제 아닙니까.
<>정회장=처음부터 입찰이 된다고 했으면 문제가 없는 건데 시비를
걸어오는 바람에 ....국내 사업도 그렇지만 해외사업에서 정말 피해가
큽니다.
오만과 카타르로부터 건조 실적만 있으면 한라에게 LNG선을 대량
발주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놨는데 한사장 말때문에(한갑수 가스공사사장의
한라중공업 입찰 부적격 발언) 짝짓기를 시도해보겠지만 시기적으로 늦은
것같아 걱정입니다.
-밖에서 보기엔 한라와 현대는 형제그룹이니 현대상선과 손잡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드는데요. 현대상선은 2척까지 수주할 수
있게 돼 있잖습니까.
<>정회장=현대 입장은 지금 모르겠어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겠지요. 알아봐야죠.
-현대 얘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한라는 현대의 도움으로 이렇게 i
성장하지 않았느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회장=특별히 이렇다 하게 도움받은 것 없습니다.
-그러면 한라가 현대에 도움을 준 것도 없었나요.
<>정회장=도움을 받은 것도 도움을 준 것도 없어요.
-최첨단 조선소도 지었고 한데....앞으로 필생의 역점 사업으로 구상
하고 있는게 또 있습니까.
<>정회장=원래대로 중공업입니다. 처음 맘먹었던대로 밀고 나가 아주
활발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 다음 에너지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발전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이
그런 분야지요. 중공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한 분야거든요.
-국제전화사업 참여도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정회장=중공업을 위해서뿐 아니라 그룹 전체를 위해섭니다.
통신 사업은 그룹 전체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거든요.
-현장 경영을 늘 강조하신다면서요.
<>정회장=확인 경영을 위해서지요.
간부와 직원들이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나를 먼저 확인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업태를 파악하고 생산성도 봅니다.
생산성으로 말한다면 통상산업부가 100ppm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우리
공장중엔 이미 이미 50ppm을 달성한데가 있지요.
강원도 문막에 있는 만도기계 공장이 그래요.
이 공장은 내후년초쯤 되면 30ppm까지 갈 겁니다.
그런 변화와 성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면 현장에 가야죠.
-현장에 가면 이 공장은 참 잘되고 있구나 하고 직감적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요.
<>정회장=그럼요. 분위기만 보면 실태를 금방 알 수 있어요.
질서가 잘 잡혀있고 깨끗하면 잘 돌아가는 공장에 틀림 없습니다.
모름지기 회사는 깨끗해야합니다.
-경험해본 사업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정회장=얼른 생각 안나는데....역시 창원공장(현 한중) 건립입니다.
그때가 70년대말이었으니까 당시만해도 자금이나 기술교류가 무척
어려웠던 상황이었죠. 그걸 다 해놓고 보니 쾌감을 느낄 수 밖에.
1백30만평 땅에 공장을 짓는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압니까.
지금도 그때 고생한 사원들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맡은 일들을 정말
열심히 잘 해주었지요.
-반대로 가장 괴로왔던 때는 언제입니까.
<>정회장=그것 역시 한국중공업을 빼앗겼을 때지요.
-지난번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때 30대그룹 총수로서는 유일하게
제외되셨지요.
<>정회장=원래 그런 건 제 성격에 맞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비굴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렇게 돈 갖다주러 가서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운 생각이 들고요그럴
시간이 있으면 공장에 가서 생산라인 한 번 더보는게 낫지요.
그리고 그때 80년대 초 상황이 내가 매달 재판을 받고 하던 때라 줄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회장께선 또 공부하는 기업인으로도 정평이 나있지요.
<>정회장=그냥 차안에서 라디오 듣고 정보 얻는거죠. 여행 다니면서 신문
잡지도 자주 봅니다.
신문 경제면을 다 읽어요. 그게 다 정보 아닙니까.
-아무래도 연로하시니까 세간에선 한라의 후계구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정회장=어슴푸레하게 정리해두고 있지요.
-어슴푸레하게나마 말씀해주시지요. 차남인 정몽원 부회장이 젊은
경영인으로서 잘 하고 있다면서요.
<>정회장=그것도 연결이 되겠지요. (부회장이) 잘 해줬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형제분들, 특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는 자주 연락하고
만나십니까.
<>정회장=피차 바빠서 자주 못 만나지요. 집안 제사나 일이 있을 때
보는 정돕니다.
-앞으로 개인적인 소망이 있으시다면.
<>정회장=내 병을 당장 다 낫게 해주면 좋겠어요.
-사업에서는....
<>정회장=정부가 풀건 다 풀어주면 좋겠어요.
-정부의 규제가 많다는 말씀이군요.
<>정회장=내 생각엔 문민 정부가 들어서고나서 정치도 안정되고 경제도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로 좋아져 국민들 사기가 많이 오른 것 같아요.
그러나 정부의 규제는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많이 풀었다고 하지만 이렇다하게 느낄 수가 없어요.
요즘 내놓고 있는 대기업 정책도 더 묶는 쪽으로 가는 것만 같습니다.
-후배 기업인이나 젊은 경영자들을 위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정회장=우선 경영자는 품행이 단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업을하건 국가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을 해야하고요.
주위에 폐를 끼쳐서도 절대 안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사내나 주위 모든 사람들과 항상 좋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여행하다 읽은 책중에 이런 격언이 있었어요.
"There is no luxury than peace of mind"란 말입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5만달러가 아니라 5천억달러가 있으면
뭘 하겠습니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야 사업도 잘 됩니다.
< 정리 = 심상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