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는 것이 미국 공직자들의
확고한 생각이다.

국무성 사람들이 그렇고 무역대표부 사람들이 그렇다.

심지어 주정부의 말단 공무원들까지도 자기네 주에 이익이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선다.

CIA요원의 주 임무가 외국의 산업정보 수집이라는 것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보스니아에서 사망한 론 브라운 상무장관은 이렇게 미국을 위해 뛴
대표적인 공직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클린턴대통령의 가장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으면서도 워싱턴에 앉아
정치흥정의 놀음은 하지 않았다.

브라운장관은 재임기간동안 무려 15번이나 2백여명의 재계리더들을 이끌고
중국 인디아 남아프리카 중동 브라질등 여러 대륙을 누비며 직접 해당국
정부와 수주협상을 벌였고 수출증대에 발벗고 나섰다.

이번 보스니아 방문역시 51억달러에 이르는 이 지역의 전후복구사업에
미국기업들을 참여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발로뛰는 브라운장관은 넥타이를 맨 정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산업현장을 방문할 때는 물론이고 사열을 받을때 조차도 재킷을 걸친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얼마나 자기일에 열성적이었는가는 상무부내에 설치한 워룸(WAR
ROOM)을 보고 짐작할수 있다.

워룸은 미국기업의 해외진출을 돕는 컨트롤 타워이다.

이곳에서는 세계 1백대 프로젝트를 직접 관장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덩치가 커 기업인들의 힘이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때마다 브라운장관은 앞장서 나섰으며 때로는 대통령까지도 동원했다.

이런 브라운장관을 두고 뉴욕 타임즈는 사설에서 "미국의 전통적인 공복의
모범을 보였다"고 추켜 올렸다.

기업인이나 민주당, 흑인들로부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브라운장관
이었지만 공화당으로부터는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뇌물수수 특혜혐의 로비스트시절의 행위등이 문제가 되었다.

일부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이 큰 문제로 부상되지는 않았다.

미국을 위한 그의 열정에 비하면 스캔들은 하나의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라운장관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군복무시절 대위로 한국에 와 카투사요원을 교육하는 학교의 교장을
지냈다.

따라서 행정부내에서는 지한파로 분류됐다.

어쨌든 브라운장관은 미국주식회사의 건설을 위해 발로 뛰는 공무원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열풍에 휘말려 있는 우리 공직자들이 한번쯤 눈을 뜨고 봐야할 대목
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