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이 "회진시"를 다시 읽으며 어색한 문장들을 고치고 다듬고
있으려니 홍랑이 찾아왔다.

장생은 앵앵의 소식이 궁금하여 신을 신는둥 마는둥 하고 달려나가
홍랑을 맞이하여 마루에 마주앉았다.

"앵앵 낭자는 요즈음 어떻게 지내느냐?"

"아씨는 그 동안 몸이 편찮아서 누워 계셨어요.

도련님이 염려하실까봐 소식 전하러 온거예요"

"언제쯤 여기로 다시 올 수 있다더냐?"

장생의 입술에는 침이 말랐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홍랑이 일어나자 장생이 황급히 "회진시"가 적힌 종이 두루마리를
홍랑에게 건네며 앵앵에게 전해달라고 하였다.

홍랑이 집으로 돌아와서 그 시를 앵앵에게 전하자 앵앵은 아직 성치
않은 몸이었지만 애써 상체를 일으켜 그 시를 읽어나갔다.

홍랑이 옆에서 지켜보니 앵앵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히다가 어느새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시를 다 읽고 나서는 종이 두루마리 위에 엎드리더니 그것이
다 젖도록 흐느껴 울었다.

얼마나 감동적인 시이길래 저토록 아씨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인가.

홍랑은 그런 시를 남자에게서 받은 앵앵이 무척 부럽기만 하였다.

"홍랑아, 나를 좀 부축해서 일으켜다오"

앵앵이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날 채비를 하였다.

"아씨, 어딜 가시게요?"

"장생 도련님에게 가봐야겠다"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괜찮다. 다 나았다.

조금 있으면 날이 저물테니 그때 나를 부축해서 도련님 있는 데로
데려가다오"

그리하여 그날 밤, 앵앵은 다시 장생에게로 왔고 이전보다 더욱 뜨겁게
애무를 나누며 몸을 섞었다.

하지만 앵앵은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교합이 끝나자 온몸에 식은
땀을 흘리며 신음하였다.

장생이 수건을 더운 물에 담갔다가 짜서 땀으로 흠뻑 젖은 앵앵의
몸 구석구석을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고마워요"

앵앵이 수건을 쥐고 있는 장생의 손목을 부드럽게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로 앵앵은 날이 저물면 그렇게 장생을 찾아왔다가 날이 새면
살며시 돌아가곤 하였다.

앵앵은 눈에 띄게 건강이 회복되어 갔고 장생의 품으로 파고드는
몸짓도 날로 그윽해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