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4일자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조장희교수의 글은 일반인으로 하여금
정부가 정도가 아닌 과학기술정책으로 오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과학자의 한사람으로 한마디 하고자 한다.

조교수의 기고문중 "노벨상을 타는 연구소나 특수대학을 만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타야겠다고 하는 생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과 다를것이 없다"는 내용은
마치 정부가 노벨상을 타기위해 무모한 기관(고등과학원)을 설립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내용이다.

또한 기고문중 뢰딘교수가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가능성에 대해 조언한
것을 "노벨상은 노벨상을 타겠다고 결심해서 타는 것이 아니다. 과학하는
인구가 많고 꾸준하게, 또 성실하게 많은 과학자들이 훌륭한 일을 하고
있을때 그중에서 우연히 생각지 않던 연구가 노벨상을 타게하는 것이다"란
대목은 앞 대목의 주장 논리가 모순임을 바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과거 60~70년대에는 외국기술의 도입.소화에 치중
했고 80~90년대에는 도입기술의 개량및 연구개발활동을 통해 자체개발에
노력하여 왔다.

앞으로는 세계 수준의 앞서가는 기술을 개발해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구개발조직은 70년대까지 각 정부출연연구소가 설립되어
취약한 민간기업의 연구능력 보완과 과학기술 하부구조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였고, 80년대에는 기업의 기술개발능력이 신장됨에 따라 기술공급 기능
이나 연구능력 보완기능은 점차 축소되어 특정연구개발사업 같은 국책연구
과제의 수행이 더 중요한 기능으로 변화되어 왔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기초분야보다 산업응용을 위한 연구개발에
치중하여 왔다.

현재에 이르러 기술이 점차 고도화됨에 따라 라이프 사이클이 급속히
짧아지고, 기술의 다중합(Multidisciplinary)현상이 가속화되어 기초과학이
응용기술로 연결 개발됨에 따라 기초과학의 연구없이는 선진기술의 개발이
요원할 뿐만아니라 외국기술의 습득이전도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육성을 위한 고등과학원설립은 미래
를 내다본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특히 선진서방국가들이 일본의 기초과학에 대한 무임승차에 비판과 더
이상의 묵인을 허용치 않을 움직임이 일고있는 현시점에서 볼때 더욱
그렇다.

우리는 역대 노벨상수상자의 대부분이 유태인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적의 유태인이 노벨상을 탄 예는 한건도 없다.

이스라엘이 생존을 위한 국방과학에 치중한 결과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고등과학원 설립시 노벨상수상자 초빙은 필요하다고 본다.

혹자는 외국석학 초청시 소요되는 경비가 고령임을 감안할때 활용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이 있다.

사실 이러한 석학의 활용에 따른 이득은 경제학에서의 산술적인 이윤개념
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 이득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 그 파급효과가 산술적인 방법으로 측정할수
없는 천문학적인 규모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포병장교 출신으로 황제 즉위후 그가 지배한 정복지에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전하여 자유주의 민족주의를 육성시키기도 하였으나 특히
그의 용병술은 유명하다.

혈기왕성한 젊은 병사는 전투요원으로 투입하여 선두에 앞세우고 나이든
병사는 퇴역시키기보다 포병으로 활용하여 실전의 노련한 경험을 재활용하여
후방에서 적의 예봉을 포격.차단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갔다.

노장의 노련한 경험과 안목을 활용할줄 아는 선견지명은 경제학적 이득
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벽돌 한개를 절약하기 위하여 건물전체를 포기하는 논리와 학력보다 능력
중시를 위하여 대학폐지를 주장하는 논리가 우리사회 발전에 필요한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김동주 < 과기처 인력계획과 서기관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