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동쪽에는 락산이 있고 서쪽에는 안현이 있는데, 두 산이 서로
다투는 형상이다. 그 때문에 반드시 동인 서인의 싸움이 있을 것이다"

조선조 명종때의 술사 남사고는 한양의 지세를 보고 이렇게 예언했다.

그는 이어서 "락"은 파자하면 "각마"가 되어 동인은 반드시 분렬해
각당이 될것이며,"안"은 "혁안"이 되니 서인은 반드시 바람직하지
못한 인물을 제거해야만 안정된다는 말도 남겼다.

그 뒤 남사고의 예언은 적중해 선조8년(1574) 동인 서인의 붕당이
생기더니 뒤이어 동인은 다시 남인 북인으로 갈렸고 숙종때 와서는
서인이 다시 노론 소론으로 분렬된다.

사색으로 불리는 이 노소남북이 200여년동안 엎치락 뒤치락하며
조선왕조를 이끌어온 붕당들이다.

동.서 붕당이 생기기 3년전인 1571년 당시 영상이었던 이준경이
죽으면서 "붕당의 사를 깨뜨려야 한다"고 선조에게 진언했을때 율곡
이이가 "지금은 조정이 청명한데 어찌 붕당이 있겠습니까"했다는 것을
보면 율곡도 그때는 3년뒤의 일도 예견하지못했던 소장 유신에 지나지
않았던듯 싶다.

과거의 일본인학자들의 "당파성논"에 동조할 생각은 없고 조선조500년이
당쟁때문에 망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붕당정치는 왕권을 견제하고 사람사회의 공론을 정치에 직접
반영시키는 긍정적 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붕당들이 공도의 실현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임인 "진붕"
이었는지,반대로 사리의 도보를 일삼는 자들의 모임인 "위붕"이었는지를
따져보면 진붕보다는 위붕의 요소가 많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붕당간의 싸움은 민생문제의 정책대결이었다기 보다는 복상문제
왕자책봉 왕비폐비등의 대의명분에 치중돼 있었고 궁극적 목표는
정권장악이었다.

붕당은 그 우두머리의 학연 혈연에 의해 구분되고 그것이 저절로
지연과 연결되면서 지역구분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결코 진붕의
모습은 아니다.

아마 정당아닌 붕당의 한계가 이런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한창 술렁대고 있는 정당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에는
정당은 없고 붕당만,그것도 위붕만 설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된다.

사리를 다투는 정객들에게는 이익밖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겠지만
준엄한 유권자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은 군웅이 할거하는 춘추전국시대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