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일로 천안문사태가 일어난지 6년째가 된다.

등소평사후를 대비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미래는 밝을
것인가.

특히 지난 몇년간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의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권력다툼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불안감이
적어도 당분간은 중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것이 중국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앞을 다투며 중국에 몰려들었던 화교자본이 최근들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고 홍콩의 대부호인 이가성은 투자자산중 35%를 회수하겠다고 공식발표
까지 했다.

중국의 미래에 대해 기업들이 갖고있는 불안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요즘 중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강택민국가주석의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돼 있다.

북경시민들은 그를 기회주의자로 여겨 왔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중국최고기관인 정치국 서열 8위이며 10년이상이나 북경시 최고의 자리에
군림해 왔던 진희동 시서기를 지난 4월26일 쫓아낸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공산당정권에 의한 신중국건설이래 이정도의 실력자가 경제범죄연루혐의로
파면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기에 중국시민들은 놀라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3월까지 적발된 부정부패등 경제범죄는 6천2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4%나 많다.

강택민주석은 이 시기에 왜 필사적으로 이러한 반부패운동을 전개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6년전의 "6.4의 망령", 즉 천안문사건의 재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만연되는 부패를 이대로 방치하면 내전으로 국민당이 실패.자멸했던 것처럼
공산당도 같은 운명을 걸을지 모른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천안문사건은 민주화요구라기 보다는 부패관리나 태자당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등소평이 죽게 되면 같은 사건이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20%를 넘는 인플레로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동북지방이나 사천등지에선
식량배급제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국유기업파산등에 의한 해고가 급증하고 농촌엔 2억이 넘는 실업자가 있다.

학생.인테리층뿐 아니라 노동자및 농민까지 가세하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만일 또 군대를 투입, 진압한다면 공산당정권의 정당성이 없어지고 국민의
신임도 완전히 잃게 될것이다.

이같은 사태의 발생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패척결의 의지를 국민들
에게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강택민은 이처럼 부패척결을 절호의 돌파구로 삼고 새로운 권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진운의 서거, 등소평의 쇠약등으로 시행시기도 적절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택민은 6.4사태 6주년을 계기로 다소 독자적인 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지방분권에의한 개혁개방의 가속을 추진한 등과는 반대로 중앙의
계획을 주체로 하는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한다.

둘째 경제발전을 우선하고 부패를 관대하게 봐준 등과는 대조적으로 당의
존망에 관계되는 간부의 부정을 엄밀히 적발한다.

셋째 유럽및 미국과는 다소 거리를 둔다.

이는 냉전시기의 중.미에 의한 소련견제에서 중.러시아에 의한 미국견제로
의 변화를 의미한다.

넷째 공산정권의 정당성을 계속 호소하는 것이 어렵게돼 국가(민족)주의를
환기시켜 정권유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다.

남사군도나 대만문제등이 이에 속한다.

다섯째 연해우선으로부터 내륙지역을 중점 개발하는등 외자의 선별도입을
통해 연해와 내륙의 격차를 시정할 것으로 보인다.

송평을 제외한 장로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강택민의 권한은 확대되고 있다.

만리 팽진의 지지를 얻었던 진서기를 어렵지 않게 제거한 것도 두장로의
쇠약에서 그 배경을 찾을수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인사정책등을 계속 강행해 나간다면 다른 사람들의 반발을
피할수 없을 것이다.

강택민의 독단적인 중앙집권을 반대하는 사람은 교석을 비롯해 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상당기간 중국에서는 강택민의 독자적인 체제다지기가
계속될 것이고 그것이 어느정도 수준에 이를때까지 중국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각은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 북경=최필규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