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경협은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아직 완전한 "경협"의 단계에 와
있지 못하다.

"중국을 통한 남북한 기업간의 거래도 매우 초보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않는다. 진정한 경협이란 시설재의 반출이나 인원의 왕래등이 후속적으로
따라야 하나 현상황은 그렇지 못하다"(이은범 쌍용 북경지사장)

중.북한간 경제관계 패턴의 변화는 한국기업의 개입여지를 높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한간 정부차원의 접근을 시도해온 지난 2년여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핵문제교섭에서 나타나듯이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따라 한단계 발전된 경협을 기업차원에서 구사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다양한 업종에 걸쳐 이미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북한시장을 활용한
사업을 전개하려할 경우에도 실리보다 우선한 남북한 쌍방간의 "정치적
기류"가 문제가 돼 왔다.

"북한사정에 정통하지 못한 한국기업은 중국기업 또는 중국인의 눈과 귀를
빌려 북한을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한계마저 느끼고 있다.

결국 관건은 북한측이 어느정도 한국기업에 개방의 폭을 넓힐 것인가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안경호 LG상사 본부이사)

"불행하게도 92년 한.중수교이후 한국기업의 중국을 통한 북한접근은
여러가지 변수에 의해 1차원적인 접근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농수산물과
같은 1차상품의 거래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북한기업의
구매력이 높은 것도 아니다보니 자연 거래패턴도 다양화되기 어렵다"
(정희진 효성물산 중국총괄사장)

선결과제가 너무 많다는 점은 역시 부담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동북지역 정부가 북한과의 교섭을 증대하는 등 다각도로
활로를 개척하고 있으나 역시 관건은 북한의 입장이다.

체제유지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앞두고 쉽사리 빗장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당분간 중국기업을 통한 남북한 기업간의 거래가 계속될수
밖에 없다.

"남북한간 경협확대에서 중국이 가진 의미는 중국을 무대로 움직이는 북한
기업이 그나마 많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중국이 남북한간의 중립국적
역할을 자임한 측면도 있다. 중국의 한반도문제에 대한 등거리외교방식
고수는 한편으로 보면 중국기업의 실리를 더욱 보강하는 정책이라 할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남북한기업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기준들을 설정할수 있게되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 급한일이다"(이종수
선경 북경지사장)

이 점에서 중국은 지역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산발적인 접촉은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거래당사자가 많다는 것은 결국 문제발생의 소지도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경협은 몇가지 선행조건을 해결하지 않고는 단기적으로 활성화가
어렵다는 비관론도 등장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수로협상을 보면 한국이 배제되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 북한이 한국기업에 대해 추파를 던져온 지난 2년동안 한국기업이
북한내에 뚜렷한 투자를 한 흔적이 없다. 북한은 최근들어 이를 명분으로
한국기업 투자배제론 또는 투자지역 한정론(나진.선봉)을 유포하고 있다"
(조원진 대우 북경주재부장)

최근 북한기업과 접촉한 비즈니스맨들은 현시점에서 북한이 한국기업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경협이 "정치적인 변화의 산물"이 되고 있다.

경제면의 독립적인 협의나 진출이 없다는 점은 쌍방간의 경협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북한측이 의도하는 정부간 대화없는 기업차원의 협력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그러면서도 경협이 알게 모르게 논의되고 있는 현실은 북한도 경제가
문제해결의 한 고리로써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하동만
주중 한국대사관 경협관)

"경협"이 없는 현재의 남북한 경제관계 강경한 대응논리만이 있는 현황
에서는 어떤 기업도 현재 진행되는 가공무역방식 거래 이상을 추진할수
없을 것이다.

가공무역도 의류등 몇개상품에 한정되고 있을 뿐이다.

이를 다양화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방법은 역시 빈번한 남북한 고위당국자들의 접촉에서 찾아질수 있을
것이다.

< 북경=최필규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