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이 무상한 증권가에도 장수지점장은 있다.

동물적인 투자감각과 뛰어난 관리력으로 용케 주식투자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일선영업으로 잔뼈가 굳은 이들중 일부는 샐러리맨의 별이라는
이사가 되기도 한다.

현재 지점장중엔 타고난 영업실적을 인정받아 이사 또는 이사대우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도 많다.

쌍용 강남 홍기봉,쌍용 명동 이헌기,동부 을지로 김도영,한진 소공동
신현우,동양 영업부 이기철,서울 석관동 유두영이사등이 그렇다.

몇개지점을 총괄하는 영업본부장등을 맡으며 화려하게 상무나 전무급
으로 진입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사장이란 최고경영자로 가는 길목의 만리장성을 넘은 일선지점장출신
사장은 아직 없다.

물론 사장이 단순히 영업능력만으로 오르는 자리는 아니다.

지점장출신인 D증권의 H상무는 "사장은 정치적인 자리인데다 영업외적
능력도 탁월해야하며 운도 따라줘야한다"고 말한다.

관리직출신에선 곧잘 사장이 나온다.

일선지점장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유통영업을 잘하면 끝까지 유통쪽만을 맡긴다.

기획 국제인수등 다양한 부문에서 최고경영자로서의 식견을 갖출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영업을 못하면 후선부서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능력없는 증권맨으로서
중도하차하게 된다.

영업맨이란 딱지가 죄인 셈이다.

그래서 내근부서에서 근무하다 지점장으로 나갈때는 회사로부터 일정
기간뒤 본사에 복귀한다는 약속을 받아내려 한다.

S증권 P전무는 왕년에 국일증권 지점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소형D증권 상무를 거쳐 S증권으로 옮긴뒤 부사장이 없는 이 회사의
2인자격인 전무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곧 열리는 주총에서 물러난다.

지점장출신중에선 증권사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사장의
문턱에선 좌절하고 만다.

출중한 영업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급의 전망이 없자 스스로
사장이 된 지점장출신 임원도 있다.

이승배 산업투자자문사장. 지난 82년부터 86년까지 동양증권 을지로
지점장을 맡는 동안 약정에 관한한 필적할 상대를 찾지 못했다는
신화적 인물.

86년이후 본사로 들어와 영업담당상무로 일했으나 "영업맨은 영업밖에
모른다"는 편견의 벽에 부딪쳤다.

결국 88년 투자자문사들이 새로 생길 때 이른바 "이승배사단"을 이끌고
나와 한솔투자자문(현 산업투자자문)을 세우고 스스로 세운 왕국의
왕좌에 앉았다.

D증권의 H지점장은 "수수료수입을 늘리기위해 약정경쟁을 유발시키는
증권사경영진들이야말로 고객이익을 가장 외면하는 인물들"이라며 진정한
영업맨출신 경영자가 탄생한다면 증권계 풍토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점장들이 바라는 것은 영업맨을 약정기계가 아닌 미래가 있는 증권맨
으로 봐주는 풍토.공정한 경쟁의 기회다.

한 중형증권사의 Y지점장은 본사근무를 희망했을때 "아직 영업실적이
좋은데 좀더 수고해달라"는 회사측의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영업맨으로서 맛이가면 회사로부터 더이상 아무것도 아닌자로
취급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있다.

물론 최근들어 지점장의 역할에서 관리기증이 강화되고있고 그래서
지점장들이 사장자리까지 오를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능한 일선지점장들에게 증권사 업무전반을 파악,내근 부서장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은 여전히 증권사경영진의
과제로 남아있다.

< 정진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