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들이 도련님을 어떻게 했길래 선녀들이 못되었다고 그러세요?"

습인이 이제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보옥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물었다.

"못되었다고는 하지 않았어.

그냥 좀 실망을 했다 이거지.

선녀들이 몰려 나와 손님을 맞이할 채비를 하다가 막상 손님인 나를
보고 나서는 갑자기 표정들이 바뀌는 거야.

입들을 삐죽거리기도 하고, 흥흥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어깨에
걸친 소매를 홱 내려 겨드랑이 사이에 집어넣기도 하고..

정말 내가 무안해서 혼났네.

나를 데려온 경환 선녀도 선녀들의 반응에 당황해 하더군.

아니나 다를까 선녀들이 언니격에 해당하는 경환 선녀에게 막
따지는 거야.

귀한 손님이 왔다고 그래서, 언니가 오늘 올거라고 일전에 이야기한
그 강주 선녀가 놀러 오신 줄 알고 반가워서 달려나왔는데,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런 탁물을 데려와 청정한 선녀들의 세계를 오염시킬 수가
있어요.

이렇게 선녀들이 경환 선녀에게 대들다시피 항의하는 거야"

"아니, 귀하고 높으신 우리 도련님을 더러운 탁물이라고 하다니.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하는 데도 경환이라는 선녀는 가만히 있어요?"

습인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하긴 선화들이 향기를 토하는 그 수정같이 맑은 궁전에서 아름답디
아름다운 선녀들을 대하니, 그들이 그렇게 말하기 전에도 이미 나
스스로 내가 탁물처럼 여겨지더라구.

그러니 내가 선녀들에게 주눅이 들 수밖에.

선녀들이 나를 더러운 쓰레기 취급을 하여 천상에서 던져버리지나
않을까 겁이 나더라구.

그래 경환 선녀 뒤로 몸을 숨기고 있는데, 경환 선녀가 넌지시
내 손을 잡더니 선녀들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거야.

그러면서 선녀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빙긋이 웃으며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

우리 증조할아버지, 큰 증조할아버지들을 만나 나를 부탁받은
이야기도 하고 말이야"

"왜 도련님이 선녀들 앞에서 스스로 탁물처럼 여겨졌을까요?"

습인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습인이 볼때, 앞으로 주인어른이 되실 귀공자인 보옥이 흠도 티도
전혀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 탁물로 여겨진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몸뚱어리 전부가 하나의 오물로 여겨지더란 말이야.

그게 참 이상해.

맹자 선생은 군자삼락 중의 하나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꼽았지만, 하늘을 우러러보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싶어"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