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및 변호사의 교육 선발 임용제도를 어느 방향으로 고칠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지금 몇달째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들먹이고 있다.

중구난방식 토론에서 추출된 공통점은 현행대로 두지 말고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방향일치이다.

이런 계제에 지난주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시안을 내놓았고 대법원측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법조인자격을 의료인보다 더 중하게 보는 것은 양자가 모두 자유나 건강뿐
아니라 인명까지를 다루는 점에선 유사하되 업무의 성격상 전자에게는
강제력이 부여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법관의 자격제도가 수년을두고 개혁의 대상으로 도마에 올라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공감을 샀다가도 번번이 유야무야 돼온 까닭을 관련자 모두는
이번 기회에 자문해봐야 한다.

첫째로는 수요공급 법칙이다.

하다 못해 교통범칙금 중과등 국민 법률생활의 집적도가 급상승함에 비례,
법률서비스의 질적 양적 수요는 폭증한다.

그에 비해 공급증가율이 더디다는 점은 명백하고 공급부족으로 초래되는
현상이 무엇인가는 자명하다.

둘째 직업관의 시대적 변화요구와 그 반작용이다.

법조인 수요의 판단도 제3자가 아닌 기성 법조인의 집단이 행사한다.

공정을 생명으로 자부하지만 자신의 신분이 여느 서비스업과 같을수 없다는
법조인의 권위의식은 대단하다.

법복착용이 말하듯 법관은 "왕의 대관"이란 고전적 자존의식이 시대를
넘어 면면히 관류한다.

일종의 선민적 기득권자들에게 학원이수나 변시로 대체하여 직업의 희소성
을 깎아 내리려고 하는 요구는 자위본능만 자극시킨다.

그 사회에서 전관예우가 당연시됨은 물론이다.

셋째 수요초과의 당연한 결과가 보수의 과다다.

공급이 충분해서 수요자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만 가격정상화는 물론
서비스의 질적향상 또한 기대 가능해진다.

돌이켜 보면 특히 전관예우의 사례가 비판의 핵이 되면서 법관의 수를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는 잡혀왔다.

변호사의 적정수에 대한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으나 단계적 증원으로
타협점 모색이 가능하리라 본다.

문제는 이 중요한 대목에서 제시된, 사법제도 개혁은 법조계를 떠나서
논의될수 없다는 대법원측의 이견이다.

마치 비전문가는 그런 논의에 참여할수 없다는 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럴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은 두가지다.

사법제도개혁은 더이상 미룰수 없다는 점, 그 개혁을 권위적 직업이기주의
에 맡겨서는 백년하청이라는 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