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하면 실버타운 입주' 광고…정부 재정난에 무산
24년 속은 가입자 등 승소…고령화 시대 유사소송 주목


1980년대 중반 체신부가 출시한 국내 최초의 국영 연금보험에 들었다가 기금 부족으로 약속한 혜택을 받지 못한 가입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손해배상을 받게 됐다.

법원이 공적(公的) 연기금에 대한 국민의 높은 신뢰를 고려해 가입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국민연금기금 고갈 우려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향후 유사 소송이 제기될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민사2부(황병하 부장판사)는 민모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청구 기각한 원심을 깨고 "국가는 원고들에게 300만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민씨 등은 1985년 체신부의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체신부는 연금에 들면 1990년까지 '노후 생활의 집' 200호를 지어 입주 기회를 주겠다고 광고하며 '흥행몰이'를 했다.

당시 여러 신문에는 첫 국영 연금보험인 이 상품이 일반 민간보험보다 보험료가 저렴한 데다 가입자들이 환갑을 넘기면 연금을 타며 편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체신부가 가입자 증가율 둔화와 기금 적자 탓에 노후 생활의 집 건립사업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이후 만기일까지 사업이 무산됐다는 사실을 가입자들한테 알리지도 않았다.

2009년 11월 말 만기일이 돼서야 24년 동안 품어온 기대가 물거품이 된 사실을 안 민씨는 비슷한 피해를 당한 가입자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매달 50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연금보험의 약관과 계약 청약서에는 노후 생활의 집 관련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다.

체신부의 안내문과 광고, 신문 보도 등은 청약의 유인에 불과할 뿐 보험 계약의 내용은 아니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이를 뒤집었다.

'공적 연기금에 대한 신뢰'를 원심과 달라진 판단의 주된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국가 보험상품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는 민영 보험사와 같을 수 없다"며 "안내문과 보도를 접한 원고들은 노후 생활의 집 입주권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고, 그 신뢰가 연금보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후 생활의 집이 약관이나 청약서에는 없던 내용이라도 상황을 종합해보면 입주권 부여는 연금보험 계약의 부수적 내용으로 포함됐다고 보는 게 옳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가입자들의 구체적인 손해액을 확정할 수 없다고 전제, 배상액을 월 단위로 산정하지 않고 1인당 300만원으로 정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