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박상희 회장 카드'… 하루 만에 '없던 일'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내홍에 빠졌다. 경총 회장단이 사전 모임에서 박상희 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대구경영자총협회 회장·미주철강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했지만, 일부 회원사의 반발로 선출이 무산되면서다.

경총은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차기 회장 선임안을 논의하기 위한 정기총회와 차기 회장 후보자를 추천하는 전형위원회를 동시에 열었다. 총회에서 전형위원 구성안을 통과시키면 선출된 전형위원들이 차기 회장 후보자를 선출하고, 이어 총회에서 차기 회장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박상희 회장이 차기 회장을 맡는 게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경총 회장단 일부가 지난 19일 모여 그를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사실이 21일 알려지면서다.

경총도 박상희 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대구경영자총협회 회장·사진)이 차기 회장으로 사실상 추대됐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22일 총회에서 선출된 전형위원 가운데 일부가 “박 회장은 차기 경총 회장을 맡기에 부적절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의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총회를 열기도 전에 차기 회장에 추대됐다는 보도가 나온 게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형위원들은 회의 직후 총회에 참석한 회원사 대표들에게 “경총 회장을 맡을 만한 덕망과 경험을 갖춘 적임자를 결정하지 못했다”며 “이른 시일 내 전형위원들이 만나 새로운 회장 후보자를 추대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나 “일부 대기업 회원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내가 차기 회장이 되는 걸 반대했고, 경총은 총회 직전 전형위원을 바꾸기까지 했다”며 “내가 중소기업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토(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위는 박복규 경총 감사(위원장·전국택시연합회 회장),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김영태 SK그룹 부회장,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조용이 경기경총 회장으로 구성됐다. 박 회장은 “당초 전형위에 포함됐던 중소기업인들이 갑자기 제외됐고, 그 자리를 대기업 경영자들이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동응 경총 전무는 “당초 전형위원 명단은 가안 수준이었고, 21일 밤 최종 확정됐다”며 “전형위원 후보를 선출할 권한은 박병원 현 회장에게 있고, 총회에서 전형위원 구성안이 통과됐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경제계 반응은 엇갈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치권에도 몸담았던 박상희 회장이 경총을 이끌게 되면 주요 경제현안에서 경영계 입장을 덜 내세울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반면 총회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경총 창립 48년 만에 중소기업인 출신 회장을 뽑는 것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19일 사전 회동 자체가 대표성이 없는 자리였는데, 박 회장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게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회동에는 박 회장과 윤여철 부회장, 조용이 회장, 박복규 감사 등 회장단 일부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 관계자는 “그 자리에서 차기 회장을 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경총은 이날 박병원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배 상임부회장은 사임한다. 김 부회장은 14년간 경총 상임부회장직을 맡아왔다. 박상희 회장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한 대기업 회원사들은 차기 회장 후보로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추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병욱/박종관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