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어이 기업 배당 정책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은 어제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올해 ‘기업과의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배당정책’을 마련토록 유도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화’ 이후 1년간 개선이 없을 때는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하는 모양이다. 말이 합리적 배당이지 투자받은 기업을 겁박해 고배당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고배당 요구 방침을 세운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당시 기금운용위원회 재계측 위원들이 집단 퇴장함으로써 무산됐다. 국민연금은 다소 완화된 안을 마련해 작년 6월 기금운용위에서 통과시켰고 이제 실행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국내 간판기업들의 1,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이렇게 나오면 기업들로선 재무전략에 큰 압력과 제약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가진 기업은 292곳이다.

국민연금은 기업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이는 국민연금의 성격이나 기능, 역할은 물론이고 장기적 이익과도 상충하는 잘못된 선택이다. 고배당 요구는 우선 당장의 연금 수익률을 관리하기 위한 ‘꼼수’다. 국민연금의 지난해 수익률은 4.57%(잠정)로 2014년의 5.25%에 비해 크게 떨어진 데다 5년 평균(4.70%)에도 못 미쳐 비판받고 있다.

배당률은 경영 의사결정의 핵심이다. 정부가 나설 일도, 기업의 미래가치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이 개입할 일도 아니다. 기업가치가 배당을 통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 이론이다. 본란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대로 연금의 투자수익률이 문제라면 연금기금을 여러 개로 분할해 상호 경쟁시키거나 투자운용을 민영화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옳다.

국민연금은 투자 시간이 한 세대, 즉 30년에 걸쳐 분산되는 초장기 투자자다. 따라서 기업의 성장이 곧 연금의 투자수익률일 뿐, 한두 해의 고배당과 단기적 주가상승에 일희일비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굳이 고배당을 추구하는 것은 기금 운영자들이 자신의 단기적 평가를 좋게 보이려는 얄팍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단기투자가를 흉내 내는 것은 바보짓이다. 거위의 배를 갈라서 어쩌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