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친서민,공정사회 등으로 자유시장에 도전하더니 이제는 동반성장위원회를 앞세워 동반성장론으로 괴롭히고 있다. 동반성장위가 56개 대기업을 선정해 이들이 협력업체들과 이윤공유를 비롯한 동반성장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평가하고,그 결과를 공표하는 동시에 높은 평가를 받은 대기업에는 세제 혜택 또는 정부발주 사업 선발 우선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반성장 정책이 결코 반(反) 시장적이 아니라는 동반성장위의 주장이다. 정부는 대기업의 정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참여여부 결정은 전적으로 기업의 자율에 맡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책 내용을 보면 순박한 주장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윤공유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도입이야말로 반시장적이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인센티브는 차별적인 특혜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특혜는 차별금지 원칙을 핵심으로 하는 애덤 스미스 이래 유서 깊은 소중한 법치주의의 치명적 위반이다.

더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참여기업의 세제 혜택은 조세수입의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다른 납세자들의 부담 증가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타인들을 희생해 대기업이나 협력업체가 이익을 누리는 것도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에 섬뜩한 타격이라는 것을 동반성장위가 간과한 것은 안타깝다.

동반성장 평가도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 대부분의 평가항목들이 납품 가격이나 납품 조건과 같이 계약의 자유를 제한하는 반 시장적 내용을 담고 있다. 납품가격을 깎는 것을 '가격후려치기'라고 평가한다니,답답한 것은 대기업들이다. 임직원이 빚은 '사회적 물의'도 평가항목이라니,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절로 난다.

흥미로운 것은 동반성장위가 열거한 56개 평가대상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나라 글로벌경제의 간판스타들이라는 점이다. 수백만 또는 수천만명의 소비자들로 구성된 시장의 장구한 역사적 선별과정을 통해 선택된 기업들이다. 이들을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동반성장위가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가소롭고 건방지다. 그래서 이를 두고 하이에크가 "치명적 자만"이라고 꼬집었던 것이다. 평가대상 기업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도 당연하다.

동반성장 평가가 시장에 대단히 적대적이라는 확실한 논거가 또 있다. 동반성장위의 평가기준은 값싸고 질 좋은 기업의 공급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그래서 시장평가에 치명적이다. 소비자들에게 유익한 가치를 창출해 이윤을 많이 내고,그래서 일자리도 많이 만드는 기업들만이 커져가는 시장의 탁월한 선별과정을 훼손할 위험성이 평가지수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동반성장위가 야속하다.

동반성장 정책이 반시장적이라는 것을 직시한다면,그것은 실패가 예정돼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부품을 비싸게 사는 기업이 훌륭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판국에 소비자들이 값싼 최종상품을 구입할 기대는 접어야 할 판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윤을 협력업체에 나누어주면 임직원의 성과급이 줄어든다. 배당금도 감소하고 기업의 시설투자도 위축된다. 그 결과는 고용과 성장위축이다. 협력업체들에도 좋을 리 없다. 대기업들이 납품업체를 챙겨야 하는 부담이 커지면 부품생산을 수직계열화하거나 납품기업을 해외에서 찾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동반성장위는 동반성장이 아니라 동반추락을 불러온다'는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의 비판은 정곡을 찌른다.

동반성장위는 반시장적 동반성장 이념에서 헤매지 말고 자유시장이야말로 상생을 기약하는 동반성장의 원리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민경국 < 강원대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