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은 떨어졌고 거래도 위축됐다. 주택 매입 수요가 전세 수요로 몰리면서 전셋값이 크게 올랐다. 정부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8 · 29대책을 발표했다. 실수요 거래 활성화와 서민주거 안정을 정책 목표로 제시한 물가안정대책(지난 13일 발표)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정책 수단의 하나로 꼽히는 세제에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시장에 주는 신호가 일관되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갈피 못 잡는 부동산 세제

올해 1월1일부터 전세보증금에 대해서도 소득세를 내야 한다. 물론 '3주택 이상 보유자로 전세보증금 총액이 3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으로 과세 대상을 제한했고,초과금액의 60%에 정기예금 이자율을 곱한 금액만 과세대상 소득으로 정하는 등 범위를 좁혔다.

예컨대 보증금 총액이 6억원이라면 3억원 초과분인 3억원의 60%인 1억8000만원이 과세 대상이 되고,여기에 정기예금 이자율(연 4% 가정)을 곱한 720만원 정도가 소득으로 간주된다. 소득세율 6~35%가 적용되면 세금으로 적게는 43만원,많게는 250만원을 내야 한다.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은 1주택자(기준시가 9억원 초과주택은 제외)가 아닌 경우 월세에 소득세를 매기고 있는 것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전세보증금 과세는 기존 전세 임대인들이 월세로 돌아서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요즘 전세시장은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급자 중심이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세입자에게 그대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의 월별 전셋값 상승률은 0.6~1.0%로 불안 조짐이 뚜렷했는데도 정부는 전셋값에 '기름을 붓는 세제'를 시행했다.

정부는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면서도 실제로는 이에 역행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50~60%) 완화의 일몰 시한을 2012년 말까지 2년간 연장했으면서도 주택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취득세 감면 대상은 대폭 축소했다. 올해부터 고가주택 보유자와 2주택 이상 보유자는 상당한 취득세 부담을 새로 떠안아야 한다. 특히 부동산 시장에서는 취득세 감면이 영구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감면 축소를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 혼란과 불만 가중

부동산 세제가 통일성을 갖지 못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용산의 M중개업소 사장은 "3주택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있다"며 "집주인들이 소득세 부담을 체감하는 시점부터 전셋값은 더 큰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마포의 A중개업소 사장도 "목돈이 없어 수천만원씩 올라간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에게 기존 전세금에 월세까지 내라는 사례까지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며 "집주인들이 세금 회피를 위해 전세보증금을 축소하는 '다운 계약'을 하려는 시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취득세 감면 축소도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고가 주택이 많은 서울 강남구의 주택거래 건수(계약일 기준)는 8 · 29대책이 나온 작년 8월 208채에서 9월 229채,10월 445채,11월 608채,12월 574채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는 73채로 곤두박질쳤다.

압구정에 사는 김모씨(52)는 "중개업소에서 취득세 부담 때문에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며 "나처럼 실수요로 고가 주택 한 채를 가진 사람에게 취득세 감면 축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소연했다.

◆부동산 세제의 방향성 찾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세제를 일관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영훈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도세 중과 완화 연장과 취득세 감면 축소는 서로 상반되는 정책"이라며 "특히 주택 가격이 9억원을 초과하는 순간 2배의 취득세를 물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 교수는 "기본적으로 한국은 부동산 관련 세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높아 감세 쪽으로 가야 한다"며 "이번 정부 들어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를 높인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제는 재정 상황과도 연관된 것이어서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만 갖고 얘기할 수는 없다"면서도 "부동산 정책과 세제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서욱진/김재후/유승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