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 '일렉트릭 기타'를 끌어안고 '뮤지션'의 꿈을 열병처럼 앓아봤다는 남자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록이니 헤비메탈이니 하는 음악은 소년들의 영원한 '로망'인가.

엄격한 두발 규제가 존재하고 선배들에게 '목뼈 바스라져라' 인사를 올려야 하는 갑갑한 고등학교,마음에 둔 여학생을 의식하며 안달이 난 '양아치' 소년,별볼일없는 아이에게 어느날 서광처럼 다가온 헤비 메탈,이 세 가지 요소가 던져지면 아주 도식적인 이야기가 바로 완성될 법도 하다. 별별 억압이 판치는 현실에서 음악이라는 '젊음의 해방구'를 만난 소위 '메탈 키드'의 흐믓한 성장담!

그런데 한동원씨(38)의 첫 장편소설 《삐릿》(실천문학사)은 '음악이 젊음의 해방구인 줄 알았더니 사회와 별다를 바 없는 시궁창'이라는 정반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청춘의 열정으로 한껏 고양된 순수한 소년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1987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역사의 모순에 눈뜨게 되는 아이들도 없다. 이에 대해 한씨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개인을 작위적으로 이용하고 습관적인 설정을 하는 데 거부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보면 우연한 계기에 역사와 자신이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주인공이 많이 등장합니다. 록에 투신하는 순간 모든 세상 근심이 사라지는 이상향이 펼쳐진다는 설정도 흔하고요. 하지만 학교나 밴드나 사회의 축소판이니 우리 사회의 온갖 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한씨의 관심은 어린 소년들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의 부조리,그 중 집단과 개인의 대립을 향해 있다. 《삐릿》의 주인공 백동광은 '선생들이 허리에 권총처럼 바리깡을 차고 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고등학교에 배정된다. 학교의 악명에 걸맞지 않은 불량한 두발과 복장을 한 동광은 집중 단속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러던 중 소개팅에서 만난 여학생에게 잘 보이겠다는 일념으로 학교 전자악기부 '영 파이터스'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하지만 교내 파벌 싸움에서 학생들을 이용해 기선을 제압하려는 음악 선생이 '영 파이터스' 소속 소년들에게 대놓고 표절을 권했고,'영 파이터스' 또한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렇게'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록의 숭고한 정신과 소년들의 순수함은 더럽혀진다. 안타깝게도 권선징악은 없다. 사회가 그렇듯이.

주제는 가볍지 않지만 소설은 유쾌하게 읽힌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LP를 선물하면서 "엘피 냄새는 플라스틱이 만들어낸 모든 냄새 중 가장 문화적인 냄새거든"이라고 거드름을 피우는 동광은 귀엽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 '비트 잇'(Beat it)을 '삐레'라고 발음할 것인지 '삐릿'이라고 발음할 것인지 놓고 벌어지는 소년들의 다툼은 실소를 자아낸다. 피비 케이츠,동시 상영관,유리 겔라 등 소설에 배치된 1980년대의 소품은 향수를 자극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