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소유권에 대한 공격이 칼 마르크스만의 무기는 아니었다.

사유 재산권을 모든 불평등의 궁극적 원천으로 본 것은 '정의론'의 존 롤스도 마찬가지였다.

롤스는 엉뚱하게도 소유권과 경제 체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으로 도덕주의 철학의 기초를 삼고 그것으로서 70년대 당시 절정에 있던 자본주의를 공격했다.

소유권 없이도 시장 경제가 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은 유명한 계산 논쟁만큼이나 이미 역사적 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소유 없는 시장체제'라는 단어가 주는 주술적 마력은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불평등은 제거되어야 하며 모든 차별은 타도되어야 한다는 아름답기까지 한 주장에 이르면 더 할 나위가 없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루소의 저 유명한 논문도 알고 보면 소유권에 대한 분노에 찬 공격에 다름 아니었다.

사적 소유권에 대한 질문만큼 명징한 이념의 리트머스 시험지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보수는 보수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이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행정 규제를 정당화할 때,재벌의 부정적 이미지를 열거하면서 정부 개입의 타당성을 논변할 때, 그리고 부모 잘 만난 결과 등 '우연에 의한' 재산의 편재를 비난할 때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는 암묵적 기준 역시 소유권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기업 경영권 방어에 착안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좌파 정부 10년 동안 거미줄같은 법망에 침투한 소위 공공성,나아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독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경제는 살기 어렵다.

공정거래법,증권거래법에는 멀쩡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독소조항이 10여 항목을 넘는 정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SK가 소버린에 한껏 피를 빨린 것도 엉뚱한 의결권 규제가 원인이었다.

무려 65%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에 이르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대기업은 불법과 편법 없이는 경영권 상속이 아예 불가능하다.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대기업은 모조리 주인 없는 회사로 넘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법제다.

소유권은 소유권자에게 돌리고 그것의 연장인 기업 상속도 광범위하게 허용되는 것이 옳다.

편법과 불법을 감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다음 옳다구나 걸렸다고 잡아 족치기로 든다면 이는 원한과 증오심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대주주들이 다락같은 상속세와 수도 없는 의결권 규제 하에서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거나 비정상적으로 높은 지분율을 확보해야 하지만 이는 원천적으로 기업을 키우지 말라는 말과 같다.

바로 그 결과가 개발연대 이후 그 어떤 제3,제4의 새로운 재벌도 탄생하지 못하는 근본적 까닭이다.

기업을 확실하게 키울수록 확실하게 소유권을 빼앗기는 조건 하에서 과연 누가 기업을 키울 것인가.

공공성이라는 허황된 깃발 아래, 그리고 기업과 기업인은 다르다는 허무맹랑한 공론으로부터 기업 아닌 기업가를 해방시켜야 경제는 살아난다.

물론 기업과 기업가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답은 기업가다.

대기업을 모조리 주인 없는 회사로 만들거나,펀드매니저들이 샀다 팔았다 하면서 단기 캐시플로만 관리하는 회사로 만들 의도가 아니라면 소유권 규제는 풀고 기업상속세는 폐지 혹은 유예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 시장주의자의 엄정한 기준이 있는 것이다.

상속을 막는 것은 저축을 포기하고 문명의 진보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루소가 문명을 저주하는 오류에 빠진 것도 그 때문이다.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