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서울대 이준구 교수가 최근 "불가하오!"를 외치며 대운하 공약은 잊어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로 인기도 모았다고 한다.

중량감 있는 학자라는 것이 관심을 증폭시킨 요소임도 분명하다.

물론 놀랄 일은 아니다.

'여론으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발상은 잊어달라'는 그의 말은 그동안에는 소위 시장경제파들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지금은 거꾸로 되었으니 우선 그것이 정말 재미있다.

"지식인 행세하려면 무조건 시장원리를 옹호하고 평준화는 비판해야 하며,경제 부진의 근본 원인을 반기업 정서의 결과로 돌려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는 이 교수의 다른 글에서의 주장 역시 익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식인 대접 받으려면 그 반대로 '무한의 민족주의를 옹호하고,민주주의의 무조건적 정당성을 주장하며,입만 열면 서민층을 염려해야 하고,기업가들에게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야 했던 것 아니었던가'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토목업자적 발상'이라는 표현만큼 대통령 당선인에게 모욕적인 말이 없겠지만,그럴 줄 충분히 짐작할 만한 학자의 글에서 이런 노골적 어법을 듣게 되는 것도 놀랄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투가 이렇듯 유행인가 싶다.

이 교수의 글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그의 모든 공약이 찬성표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면에서 우선 일독을 권할 만하다고 본다.

업자들에게 좋은 것이 국가에도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지적 역시 긴 설명이 필요 없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글은 역시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아니다.

이 교수는 여론이 대운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결론을 끌어와 전제로 삼는 순환논리일 뿐이다.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쓴 글이 거꾸로 여론을 근거로 삼는 이런 유형을 우리는 정치 공세라고 불러 온 터다.

환경영향을 과소평가했다는 주장도 그렇다.

환경에 막대한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넌지시 암시한 부분 외엔 아쉽게도 근거가 없다.

"멀쩡한 산에 수로 터널을 뚫는다"고도 비난했지만 여기에 '멀쩡한'이라는 수식어가 왜 들어가는지도 궁금하다.

멀쩡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로 따지면 "멀쩡한 경제학자가…" 등의 표현도 성립되겠는데 이 단어는 반드시 그 뒤에 충분한 반전의 설명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없다.

이 교수의 글에서 가장 실망스런 부분은 갑작스레 '시대착오의 극치'라거나 '가소롭다'로 비약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교수는 인터넷 댓글을 거론하며 "애들까지 찾아와 이놈 저놈한다"고 푸념했다지만 오십보백보 아닌지.

물론 세상 일에 딴죽을 거는 것도 학자된 소임의 하나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경부고속도로에서부터 포철을 거쳐 자동차와 반도체에까지 오늘날 우리가 먹고사는 사업 중에 경제학자들이 찬성했던 전례가 거의 없었음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경제학자들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학자들의 주장이라면 일단 삭감하고 듣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좋다는 사업은 대부분이 이미 누군가가 치열한 경쟁 속에 영위하고 있는 사업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교수 말마따나 세상에 공짜가 없는 이치 때문이다.

세상은 언제나 균형이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 공돈이 놓여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경제학 아니던가.

언론인에게 세상은 언제나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고 경제학자들에게 새 사업은 언제나 "불가하옵니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직업논리상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의 말마따나 비용ㆍ편익분석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그토록 작위적일 수밖에 없다면 이 교수의 강력한 반대 주장 또한 허망한 일이다.

불가지론과 불가론을 혼동하지 말라.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