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

사람들은 그를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부른다.

오직 증권투자만으로 세계 2위, 40조원대의 부를 쌓았다.

그래서 '재물의 신(神)'이라 부를 만하다. 현대 금융자본주의가 낳은 신화라고 해도 좋다.

최근에는 물경 30조원의 주식을 빌 게이츠 자선재단에 기부키로 했으니 살아서 이미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인가.

불행히도 신화와 전설의 속내를 분해해 볼 수밖에 없다.

만일 버핏을 한국의 정서와 법률적 조건 속에 그대로 끌고온다면 이들 지극한 존칭들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불행히도 답은 "아니올시다"에 가깝다.

자칫 상속세를 내지 않은 준탈세범으로 매도될 수도 있고 거대 재벌을 통째로 아들에게 세습한다고 비난받을 여지도 있다.

문어발 기업을 족벌체제로 운영하는 전근대적 경영자이며, 상속세 때문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눈물을 머금고 팔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으로 자신의 이익을 삼는 부도덕한 사람이며 나아가 금산법이며 출총제 등 온갖 종류의 기업법을 송두리째 위반한 범법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총체적으로는 악덕 기업가로 낙인 찍힐 위험이 크다.

다른 자에겐 상속세를 내라 하고 스스로는 자선재단의 이름을 방패삼아 결과적으로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이중적 인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국의 정서와 법률 구조 하에서라면 말이다)

"상속세 폐지는 역겨운 것이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그는 우선 상속세를 한푼도 내지 않게 되었다.

빌 게이츠에게 보낸 '약정서'에 또렷이 쓰여져 있는 '기부의 조건'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는 "이번 기부금이 증여세 혹은 다른 어떤 세금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재단이 반드시 만족시킬 것"이라고 쓰고 있다.

한마디로 "세금은 못 내겠다"는 말이다.

기부의 또 다른 조건은 "빌 게이츠 부부중 한 명은 반드시 생존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짐작하기 어렵다.

아마도 장차 자신의 아들인 하워드 버핏이 경영권을 지켜내도록 빌 게이츠가 평생에 걸쳐 후원자가 되어줄 것을 기대한다는 것인지….당연한 말이지만 버핏이 나이가 많으니 사후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버핏의 계열사 중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상속세를 내기 위해-자식이 팔아치울 때 사들인 기업이 많다.

데어리 퀸, 벤 브리지 주얼리,스타 퍼니처 등이 그런 기업들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버핏에게는 상속세가 매우 좋은 세금일 수도 있다.

버핏 자신은 벅셔 헤서웨이의 현직 이사로 있는 아들 하워드에게 이사회 의장 자리를 물려주기로 이미 선언한 상태다.

세금 없는 상속은 이렇게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버핏이 소유한 벅셔 헤서웨이는 44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보석 운송 건자재 가구 정밀기계 제과 보험 신발까지 전방위적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소위 문어발이다.

모기업인 벅셔 헤서웨이는 또 금융회사다.

그래서 한국의 금산법 24조를 적용하면 이들 44개 계열사는 모조리 금산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삼성그룹을 괴롭혔던 바로 그 금산법 말이다.

미국에는 금산법이 없냐고? 물론 그런 법은 없다.

버핏 소유 주식은 모두 '클래스 A' 주식이다.

보통주인 클래스 B 주식을 1 대 30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A주식의 의결권은 30개가 아닌 200개다.

한국에는 이런 황금주가 없냐고? 물론 없다.

버핏은 이 A주식을 매년 5%씩 B주식으로 전환해 기부할 예정이다.

버핏이라는 이름에 이건희라는 이름 석자를 대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이재용 장학 재단을 설립해 모든 것을 물려주고 이 재단을 통해 삼성을 통치하도록 한다면 말이다.

아마도 한국서는 곧바로 자선 재단의 주식 보유도 금지시키자고 나설 것이다.

버핏을 신격화하는 방법으로 한국 기업인들을 매도하는 것은 또 다른 공세일 뿐 어리석고도 무지한 일이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