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극초음속·미사일방어 기술, 美·英의 50~60% 수준 그쳐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은 ‘전투기의 눈’인 능동형 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다수 국산 장비를 장착했다. 하지만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F414 엔진 두 기를 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GE사와 제휴를 통해 라이선스 방식으로 생산한다. 원천 기술은 GE사에 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하청을 받아 조립과 생산을 하는 형태다.

핵심 기술이 없다 보니 KF-21 엔진의 국산화율(1호기 기준)은 39%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국방 전략기술 수준 조사 보고서’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첨단 엔진 분야에서 한국 방위산업 기업의 기술 수준은 최고 선진국(미국)과 비교해 60%에 그쳤다. 국기연은 “낮은 터빈 입구 온도 설계, 고신뢰성 소재 데이터 부재, 감항 인증 관련 기술 부족 등 기술 격차가 큰 상태”라고 지적했다.
인공위성·극초음속·미사일방어 기술, 美·英의 50~60% 수준 그쳐

엔진 기술 갈 길 멀어

국기연은 국방부가 지난달 말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2023~2037 국방과학기술 혁신 기본계획’에 담긴 10대 분야·30개 국방전략 기술 수준을 비교 분석한 ‘국방전략기술 수준조사’를 최근 발간했다. 각계 전문가 122명의 의견 수렴과 토론을 거쳐 기술별 선도국 대비 우리 군과 민간 기업의 기술 수준을 평가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기술 중 ‘첨단엔진’은 한국이 가장 취약한 분야로 지적됐다.

여기서 첨단엔진 분야는 엔진 핵심소재·부품과 시험 인프라 등을 개발해 고성능·고신뢰성 엔진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미국 GE와 프랫&휘트니(P&W), 영국 롤스로이스 3개사가 항공기 엔진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국산 전투기로 개발 중인 KF-21이 GE 기술을 쓰고 있고, 폴란드에 수출된 ‘FA-50’ 경공격기 역시 GE의 F404-102 엔진을 사용한다. FA-50은 록히드마틴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전수한 무기다.

방산업계에선 이런 기술 격차로 인해 국산 전투기의 제3국 수출이 곧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자국 엔진이 사용된 제품, 장비에 대해 자국 승인 없이 제3국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 원전 수출을 두고 미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에 소송을 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국 공군이 양산된 KF-21로 무장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수출까지 허용할 것인지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군용 엔진기술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도해왔다. 2019년부터는 무인항공기용 완제 터보팬 엔진 통합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무인기 엔진은 유인기 엔진보다 개발 수준이 낮아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미사일 방어·정밀타격 분야 뒤처져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한 ‘한국형 3축 체계(킬체인·미사일 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 기술 인프라도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기술 중 ‘극초음속 추진’ 분야는 민간 기업의 기술 수준이 미국의 60%에 불과했다. 기술 격차도 20년에 달한다. 극초음속 추진 기술은 마하5(시속 약 6000㎞) 이상 속력을 내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토대가 된다. 우리 군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확보할 경우 유사시 북한을 선제타격하는 ‘킬체인’에 활용할 수 있다. 올초 국방부는 업무보고에서 ‘극초음속 비행체 추진기술 및 형상 설계’ 연구 계획을 밝혔다. 국내에선 ADD 주도로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하이코어’를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사일 방어’ 기술 수준은 미국과 비교해 62.2%(민간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격차는 8.5년이다. 국기연은 “극초음속 미사일, 탄도미사일 등 첨단 유도무기에 대한 방어 기술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방위사업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는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Ⅱ) 등을 2035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적군의 핵심 무기와 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포·탄도미사일 등 ‘고위력 정밀타격’ 분야의 기술 격차는 7.5년(민간 기업 기준)이었다. 우리 군은 ‘현무 시리즈’ 등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기술 격차를 줄였지만 아직 지상·함상 발사 무기에 치중돼 있다는 평가다. 국기연은 “공중 발사 무기체계에 대한 기술 개발이 상대적으로 적고, 극초음속·장거리 유도탄 등 무기체계의 기술 수준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미래의 전장인 우주 국방기술도 격차가 두드러진 분야로 꼽혔다. 민간 기업 기준 우주 비행체는 9.1년(기술 수준율 66.0%), 초정밀 위성항법 기술은 7.9년(65.7%), 우주기반 감시정찰은 5.3년(75.0%)의 기술 격차가 있었다. 미국은 인공위성을 활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기경보 체계인 ‘우주기반 적외선 시스템(SBIRS)’을 갖추고 있는 등 우주 감시정찰 분야의 최고 선진국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전장 판단이나 유무인 복합 기술 등은 격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현/이해성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