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공약' 사이서 고심

최저임금 1만원·원격의료 반대 등 민주노총이 전달한 6대 요구
대부분 대선 공약에 포함

겉으론 "잘 논의해보겠다"지만 "현실적으로 수용 어렵다" 공감대
총선 앞두고 전면 거부도 힘들어 노조 요구 일부 수용 가능성도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오른쪽)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홍영표 원내대표.  /연합뉴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오른쪽)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홍영표 원내대표. /연합뉴스

“진보 정당이 추구해 온 ‘이상’과 집권 여당으로서의 ‘현실’ 차이를 집약해놓은 것 같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 18일 여당에 전달한 6대 요구사항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이 내린 총평이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대선을 치르며 내놓은 공약이 요구사항에 모두 포함돼 있다”며 “정부 출범 후 정책들을 현실에 맞게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공약이 후퇴했지만, 진보 진영에선 여전히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내부적으론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론 “앞으로 잘 논의해 보겠다”고 하고 있다.

(1) 투자개방형 병원 및 원격의료 도입 반대

민주노총의 요구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제주 투자개방형 병원 허가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이다. 이는 민주당의 능력 밖이다. 정부가 아닌 당이 투자개방형 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허가를 철회할 권한은 없다. 어디까지나 원희룡 제주지사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요구를 한 것은 향후 투자개방형 병원 허가와 원격의료 도입 등을 막기 위해서다. 민주노총은 특히 원격의료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7월 말을 바꿔 제한적 원격의료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민주노총의 '6대 청구서'…민주당, 수용도 거부도 어려워 '진퇴양난'

노조의 조직적 압박 전략은 효과를 보고 있다. 당·정·청은 지난해 말 원격의료 도입 방안을 내부적으로 합의하고도 정작 의료법 개정안은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카카오 카풀 도입으로 인한 택시업계·노조와의 대립, 다음달 6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등을 앞둔 상황에서 의료계와 추가적인 대립전선을 형성하기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한 민주당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각종 직능단체, 노조와 계속 싸울 수만은 없다”며 “현안들이 좀 잠잠해진 뒤 법안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2) 최저임금 1만원 및 주 52시간 근로제 정착

민주노총의 요구 사항엔 탄력근로 기간 확대 반대,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중단 등 노동 문제도 담겨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 19일 현행 최대 3개월로 묶여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데 합의한 이후 반발 강도가 더 거세졌다.

정부·여당은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 공약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석유화학업계의 정비 기간 등 일시적으로 업무량이 많은 기업의 불만이 쌓여 있다. 최저임금 정책은 소상공인의 반발을 샀다. 반면 민주노총은 대선 공약인 주 52시간 근로제 정착과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7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당시만 해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했던 민주당도 현실적 어려움을 직시하고 있다. 지난 20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자료엔 “단위기간이 확대되더라도 평균적인 연장 근로시간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며 “주 52시간 근로제의 시행효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을 잘 보완할 수 있다”는 산업계 의견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탄력근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입법 과정에서 민주노총 요구를 일부 추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3)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민주노총은 민간 위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즉각 시행도 요구했다.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지만 지지부진하던 사안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형평성 문제, 공공기관의 거대화 등 각종 어려움에 직면해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 7월 정규직 전환 로드맵에서 △2017년 1단계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 △지난해부터 2단계로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과 지방공기업의 자회사 등 △3단계는 민간위탁기관 등으로 정규직화 범위를 넓힐 예정이었다. 1단계 정규직 전환은 진행률(작년 말 기준 95%)이 높지만 2단계 정규직 전환은 13%에 그쳤다. 3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인 민간위탁기관에 대해서는 아직 가이드라인 작성도 시작하지 못했다. 공공부문의 민간위탁이 워낙 다양한 데다 영역별로 성격도 천차만별이어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3단계 정규직 전환 해결은 현 정권 내에선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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