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이 16일 돌봄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홍석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이 16일 돌봄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우리 국민이 평균적으로 80년 넘게 살아가는 동안 성인이 되기 전과 노인이 된 이후를 포함하는 대략 40년은 돌봄이 필요한 시기다. 이 시기 개인은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떨어지고 근로 능력이 낮거나 없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는 돌봄이 요구된다.

산업화 이전 돌봄은 가족의 몫이었다. 돌봄 비용은 남성 노동을 통해, 돌봄 시간은 여성 노동을 통해 충당하는 방식이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세대 간 돌봄 보장을 위해 다자녀를 가질 유인도 있었다.

그러나 여성이 산업화에 필요한 주요 노동 공급원이 되면서 여성의 역할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술 발전과 보급은 여성을 임신, 출산, 가사에서 자유롭게 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사회·경제적 지위도 높아졌다. 그 결과 결혼, 출산, 돌봄 시간의 기회비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20세기 후반 이후 선진국의 출산율은 대부분 낮아졌다. 그리고 수명이 늘면서 노인 돌봄이 필요한 시간은 길어졌지만, 자녀 수가 줄면서 가족 중심의 세대 간 돌봄 보장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돌봄 본질적 문제는 시간·비용 확보

산업화 이후 나타난 이 같은 사회·경제·인구 구조의 변화는 돌봄과 관련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대전환을 불러왔다. 20세기 초부터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주요 선진국은 장기간에 걸쳐 국가 돌봄 체계를 구축해왔고, 뒤늦게 합류한 한국 역시 2000년대 이후 선진국 못지않은 국가 돌봄 체계를 빠르게 갖춰가고 있다.

그럼에도 돌봄에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본질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가족을 대신할 누군가의 돌봄 노동이 여전히 필요하고, 돌봄 비용도 어디에선가 조달해야 한다. 국가는 시간과 비용을 직접 지급하지는 않는다. 근로 능력이 있는 국민이 돌봄 종사자가 되고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통해 돌봄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돌봄의 국가 책임은 국가가 돌봄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직접 책임지느냐로 평가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공동체의 가용한 시간과 비용을 어떻게 끌어내 재분배하고, 돌봄 문제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응하느냐로 평가돼야 한다.

국가 돌봄 체계를 잘 갖춰왔다고 평가되는 주요 선진국도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도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시행한 일본은 비용 부담이 늘어나자 본인부담률을 높여가고 있으며, 복지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노인돌봄 서비스의 재정 악화로 1990년대 시장주의적 개혁을 단행했다. 1930년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한 프랑스는 지속 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개혁을 내세웠지만 거센 국민 반발에 직면해 있다. 돌봄 모범 국가로 인정받는 나라들도 돌봄 시간과 비용 확충을 위한 끊임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최단기에 경제강국이 된 한국은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초저출산과 빠른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 만큼 돌봄 시간과 비용 문제는 선진국의 점진적인 경험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공공성만 고려한 돌봄시장 ‘한계’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은 결혼과 출산의 기회비용이 국가 돌봄 체계가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높아진 결과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동 돌봄 체계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 돌봄의 미래는 암울하다. 노인 돌봄의 주요 수단인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재정수지가 계속 악화하면서 최근 5년 새 보험료율이 두 배 올랐지만 앞으로 닥칠 인구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요양병원 장기 입원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노인 돌봄 체계의 효율화 방안으로 재가 요양 활성화가 추진되고 있지만 요양보호사는 2030년까지 약 11만 명 부족할 전망이다. 제도권 밖에 있는 간병 부담도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다. 즉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노인 돌봄의 공급은 양적·질적 측면에서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돌봄은 인구 고령화가 정점을 향해 치닫게 될 향후 50년 동안 우리 사회에 휘몰아칠 중대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70년 한국의 인구 대비 고령층 인구 비중은 세계 1위가 될 전망이다. 독일 스웨덴 일본 등 어떤 나라도 가보지 못한 길이 될 것이다. 선진국의 선행 경험을 반면교사 삼는 것은 필요하지만 완벽한 가이드가 될 순 없다. 우리만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미래 50년을 대비할 돌봄 개혁이 필요하다.

돌봄 개혁은 ‘돌봄 시장’에 대한 이해와 문제 파악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때 중요한 사실은 공급량과 수요량은 시장 가격에 의해 결정되며 가격 수준에 따라 공급자와 수요자의 유인이 다르다는 점이다.

현재 장기요양 서비스, 아이돌봄 서비스 등 주요 돌봄 시장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과소 공급의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과소 공급은 단순히 공급량이 수요량에 미치지 못하는 문제를 넘어 다양해진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까지 포함한다.

과소 공급 심화의 주된 이유는 가격 규제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의 돌봄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돌봄서비스 가격을 낮게 설정하고 바우처 지원을 통해 수요자 본인 부담을 낮추고 있다. 서비스 가격 대부분은 돌봄 종사자의 임금으로 지급되는데 임금이 낮으므로 공급이 필요만큼 늘어나지 못한다. 바우처를 지원받는 수요자는 시장 가격보다 낮게 비용을 지급하니 정부 지원이 없을 때보다 수요가 많다. 가격 규제는 과소 공급 외에도 다양한 문제를 초래한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낮은 임금과 돌봄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는 돌봄 시장의 고착화한 문제다. 또한 낮은 임금은 양질의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생산성 높은 종사자의 유입을 차단하고 있고 낮은 가격 때문에 재교육이나 신규 서비스 제공도 제한적이다.

수요 측면에서도 연쇄적으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공급이 부족하니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거나 양질의 서비스를 원하는 수요자는 민간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민간 돌봄 시장은 공공 영역보다 가격이 높다. 그런데도 민간 돌봄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규제 기반의 공공 돌봄 시장의 부작용이 크다는 증거다.

요약하자면 현재 돌봄 시장은 국민 비용 부담 절감 측면의 공공성만을 고려한 채 양질의 공급 등 다른 측면의 공공성과 시장 원리의 장점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미래 50년을 대비할 수는 없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돌봄 제도·시장·인식 다 뜯어고쳐야

첫째, 돌봄 시장의 가격 체계와 비용 부담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 서비스 가격을 올려 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더 생산적인 공급자의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추가된 비용 부담은 정부와 소비자가 나눠야 한다. 서비스 품질 향상과 원활한 공급으로 늘어날 효용에 대해 소비자는 추가로 비용을 지급하고 자부담을 늘려야 한다. 가격 인상으로 돌봄서비스 이용이 어려워질 취약계층의 지원 확대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가격 규제를 완화하고 개인과 정부가 부담을 나누는 것은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초저출산과 빠른 인구 고령화로 돌봄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외치면서 가격을 낮게 유지하고 부담은 외면하고 있다.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조세, 사회보험, 자부담 등 가용한 자원을 늘리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유연하지 않으면 초저출산과 고령화 대응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부족한 공급을 전략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격 규제 완화만으로 과소 공급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 돌봄 인력의 활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유럽 주요 국가도 돌봄 서비스의 과소 공급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돌봄 인력 활용을 확대해왔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은 간호와 돌봄 인력의 29%를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 인력을 활용한 돌봄 공급 확대는 서비스 가격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수요자의 비용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돌봄 기술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돌봄로봇이 등장해 인간의 돌봄 서비스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다. 현재 세계가 집중하는 돌봄 기술은 돌봄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돌봄의 한계 비용을 낮춰 돌봄 공급 확대에 기여하고 종사자의 처우도 개선할 수 있다. 상시 관찰을 통해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기술과 수요·공급의 정보 비대칭을 제거해 수급 매칭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술 역시 공급 확대에 필요한 핵심이다.

돌봄 서비스는 가치 있는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는 인식이 높다. 그 결과 소비자는 높은 비용을 지급할 의사가 낮고, 정부와 기업은 적극적으로 투자할 유인이 작다. 돌봄 시장을 억제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수요와 공급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려면 돌봄 서비스와 시장을 매력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돌봄 기술을 통해 돌봄의 산업적 가치를 높여야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을 재규정해야 한다. 돌봄의 국가 책임은 완벽한 공급 통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수급 불균형은 심각해질 뿐이다. 경직적 규제로는 빠른 수요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돌봄 종사자가 공정한 처우를 받고 수요자가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돌봄 시장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와 제도를 유연하게 정비하고, 시장과 기술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경쟁적인 인프라와 마중물을 제공하고, 시장에서 배제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개혁은 제도를 새롭게 뜯어고쳐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일이다. 돌봄 문제는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의 원인이자 결과다. 따라서 돌봄 시장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는 우리 미래를 좌우할 중대 사안이다. 점진적인 변화와 적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제도, 시장 그리고 인식을 개혁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 홍석철 상임위원은

△2000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07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2016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2년~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생경제분과장
△2023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