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혼란기에 더욱 각광받는 금융이해력
지난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금융교육주간이었다. 국제금융교육주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교육의 중요성이 환기되며 2012년에 시작됐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젊은이들이 어려서부터 금융의 중요성을 알게 함으로써 건전한 금융 의사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지식 및 행태를 습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개개인이 금융적 웰빙을 달성하고 금전적 어려움에 처해도 회복할 수 있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공교롭게도 지난 몇 주간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고 아직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큰 파도로 인해 손실을 입게 되면 나름 건전한 금융 의사 결정을 해온 개인이라도 어리둥절하다 못해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은행 위기로 비화할 위험성이 있는 최근 사태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실패로 촉발됐다. SVB는 미국 내 규모로 16위였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저축은행 수준이어서,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그 이름을 못 들어봤을 은행이다. 남의 나라의 크지 않은 은행의 실패까지 우리가 왜 알아야 할까. 그 이유는, 첫째 그 남의 나라가 하필이면 미국이고, 둘째 SVB 실패가 국내 은행 및 금융 전반의 안정성과 기업들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확인된 바와 같이 미국의 금융 불안은 전 세계에 쉽게 파급된다. 당장 SVB와 전혀 다른 이유로 스위스의 세계적 은행 크레디트스위스가 급작스러운 주가 하락과 대량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를 맞았고, 덩달아 다른 유럽 은행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미국과 스위스의 정부 및 중앙은행이 신속하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세계는 지금 손실을 야기할 약한 고리를 색출하는 데 진심이다.

눈에 띄는 큰 고리들이 걸러지고 나면 작은 고리들에까지 의심의 눈초리가 향할 것이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 부문은 규제를 강하게 받고 규제의 큰 흐름은 국제적으로 결정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나라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는 섬세하게 이런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번 사태만 봐도 그렇다.

SVB의 급격한 실패 이면에는 미국의 중소형 은행들이 금리 같은 중요한 변수의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 점검받는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있지만, 유럽의 은행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취약 여부를 점검받고 완충 역할을 할 자본을 쌓고 있었음에도 속절없이 주가가 흔들렸다. 약한 고리 색출의 눈길이 한국에 당도했을 때 국내 은행과 금융회사들은 모두 무사할 것인가. 예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실패는 또 다른 육중한 부작용을 남겼다. 스위스 양대 은행 중 다른 하나인 UBS가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기로 했는데, 결정 과정에서 크레디트스위스가 발행한 일명 코코본드를 보유한 투자자는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조건부자본증권인 코코본드는 기본적으로 채권인데 발행 당시 명시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이자를 못 받거나 아예 원금이 지워지거나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증권이다. 일반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주식보다 먼저 제 몫을 챙길 수 있는 게 채권인데, 크레디트스위스 주식을 가진 주주들은 손해를 보고 UBS 주식을 받을 수 있게 된 데 비해 코코본드 투자자들은 채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빈손이 된 것이다. 큰 소송이 예상되는 가운데 당장 코코본드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우리나라 은행 및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들도 비슷한 역할의 신종자본증권으로 비교적 쉽게 자금을 조달하던 관행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국제금융교육주간의 슬로건은 ‘배우고, 저축하고, 벌자’이다.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고 금융이 지속적으로 복잡해지면서 생존을 위해 배워야 할 금융 지식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는 역량이다. 금융이해력이라고 불리는 그러한 역량을 어려서부터 익혀나가지 않으면 커서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집단 간 금융이해력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문제다. 국제금융교육주간은 지났지만 그 의미는 이 혼란기에 계속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