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국민연금 고갈, 일단 10년이라도 늦춰야
예상된 결과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지난주 국민연금 개혁을 포기한 것 말이다. 연금특위는 작년 11월에 민간자문위원회를 두면서 올해 1월 말까지 복수의 방안을 받아 활동 시한인 4월 말일까지 이해당사자와 국민 의견을 수렴해 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를 돕기 위해 3월 말 발표로 계획돼 있던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확정 전 상태에서 1월에 공개했다. 예상대로 재정이 빠르게 악화한다는 심각한 결과였다. 하지만 연금특위는 지난 9일 정부가 안을 내고 국민을 설득하면 국회는 최종 판단만 하겠다며 사실상 손을 놨다.

사태의 발단은 민간자문위원회가 단일안을 도출하지 못한 데 있다. 이 위원회가 단일안을 낼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표 계산이 바쁜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도 반발이 심할 국민연금 개혁을 하게 하려면 최소한 민간자문위원회의 단일안이 필요했다.

이를 몰랐을 리 없는 민간자문위원회가 단일안을 도출하지 못한 것은 철학이 부딪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소득의 9%에서 15% 정도로 올리는 것은 어느 정도 합의가 됐는데, 연금 수준을 생애 평균 소득의 40%로 유지하자는 주장과 50%로 높이자는 주장이 맞섰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받자는 쪽은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더 받자는 쪽은 은퇴 후 소득보장을 강조한다.

재정안정과 소득보장 모두 중요하다. 재정안정은 애초에 국민연금을 개혁 대상으로 만든 기본 전제다. 재정안정화 주장은 국민연금 기금이 2041년부터 줄기 시작해 2055년이면 없어지는데 이런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보장 주장은 국민연금이 은퇴 후 생계 보장을 지향하는 만큼,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심각하게 높고 국민연금을 받는 많은 사람이 가입 기간이 짧아 실제로는 소득의 40%에 훨씬 못 미치는 연금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제시된 방안들로는 어떤 목표도 달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재정안정을 확보하기에 보험료율 인상 속도와 수준이 충분치 않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매년 연초에 연금으로 지급할 만큼의 기금을 확보하려면 당장 2025년부터 보험료율이 18% 가까이 돼야 한다. 2025년부터 매년 0.5~0.6%포인트씩 15%까지 올리는 안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 소득을 보장하기에는 50%도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또한 은퇴자들이 국민연금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어차피 또 해야 하는 연금개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무산된 방안들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금 고갈 시점을 10년 정도 늦추는 정도였다. 10년의 시간을 벌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출산율이 반등해서 기금 고갈 시점이 더 늦춰지길 희망하기는 어렵다. 연금받을 사람들은 이미 정해졌고 점점 오래 사는데, 이제 태어날 아이들이 20여 년 뒤부터 연금 보험료를 내서 재정안정에 기여할 부분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5년, 10년에 한 번씩 국민연금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아니면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수명이 길어지는 것에 맞춰 연금받기 시작하는 나이나 보험료율 같은 것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체계를 논의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 체제가 급변한 현실을 담기에 낡은 틀이라면 기초연금이나 사적연금을 포함해서 근본적으로 개편할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좋다. 다만 이런 논의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10년의 시간을 벌 뿐이어도 의미가 있었을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 연금특위는 활동 기간을 연장해서 공적연금 전반의 구조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최소 규모의 국민연금 개혁도 하지 않은 그들이라 공허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정부는 할 수 있는가? 정부가 아무리 좋은 안을 만들어도 법을 바꿔 시행 가능하도록 할 주체는 국회이기 때문에 이번 개혁 실패가 특히 암울한 것이다. 애초에 정부가 책임 있게 연금개혁을 끌고 갔어야 한다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연금개혁이 이토록 중요한데 설마 무산될까 지켜보던 국민 입장에서 예상된 전개라고 실망하지 않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