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스타트업 예산' 깎아도 너무 깎는다
“모태펀드 예산을 더 늘려야 할 판에 왜 줄이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강삼권 벤처기업협회장은 25일 열린 제20회 벤처썸머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내년 모태펀드 예산을 대폭 줄인다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모태펀드는 민간의 벤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재원이다. 벤처캐피털(VC) 등에 출자하면 VC는 이를 종잣돈 삼아 벤처 펀드를 만들어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모태펀드는 국내 스타트업 투자 수요를 끌어낸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 삭감 움직임에 국내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도 지난 3일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모태펀드를 줄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모태펀드 예산을 2500억원 수준으로 책정할 전망이다. 올해 520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1조700억원과 비교하면 4분의 1토막 정도로 급감한다.

이 장관도 업계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전날 “절반까지 감액되지는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관련 예산 축소는 벤처 투자 시장도 민간 주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업계도 정부가 모태펀드 예산을 무한정으로 늘릴 수 없고, 민간이 앞서야 투자 시장이 더 활성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관련 예산 감축 속도다. 스타트업 업계는 “삭감 폭이 지나치게 크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글로벌 경기 악화로 투자 시장과 자금 회수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고 있어서다. 지난 2분기 국내 벤처 투자액은 1조8259억원으로 1년 전보다 4.2% 줄었다. 분기 기준으로 2020년 2분기 이후 첫 감소였다. 투자 시장이 위축되자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겪고 있는 일부 스타트업은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기업가치 3조원까지 거론됐던 쏘카는 최근 몸값을 1조원 아래로 낮춰 겨우 상장하는 등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도 자금 조달에 힘겨워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가운데 모태펀드 삭감을 대규모로 추진하면서 비 오는 데 우산을 뺏는 형국이 됐다.

국내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다. 상반기 기준 벤처·스타트업 3만4362곳의 고용 인원은 76만1082명에 달했다. 1년 전보다 9.7%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기업의 고용 증가율(3.3%)보다 세 배 정도 높았다. 모태펀드는 정부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모태펀드 수익률은 13.6%였다. 작년 국민연금 수익률(10.7%)보다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