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모씨 아들(19)이 “(진실 규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이 담긴 대통령의 편지를 어제 청와대에 되돌려줬다. 약속 이행을 1년3개월 넘게 기다리다 지친 이군이 “대통령 편지는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면피용에 불과했다”며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거짓말일 뿐”이라는 내용의 답장도 전했다.

피격 사건 뒤 일련의 정부 대응을 돌아보면 이군의 이런 울분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족들은 정부로부터 이씨 사망과 관련해 어떤 설명이나 통보도 받지 못했다. 해양경찰은 “도박빚 때문에 자진 월북했다”고만 밝혀 유족들이 명예훼손 소송까지 냈다. ‘월북 확신 증거’를 보여달라는 요구는 ‘국가 기밀’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작년 11월엔 북한군 총격 당시 청와대 등이 보고받은 각종 서류를 공개(통신 감청 등은 제외)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으나, 정부는 이에 불복하며 항소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도 권고한 정보 공개에 대해 정부는 ‘한반도 평화 관련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 창구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목적 외에 공개되면 곤란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니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한 것이 과연 진실 규명이었는지, 진실 뭉개기였는지 헷갈리게 한다. 대통령의 편지 속에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는 말도 애초에 지키지 못할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 말의 무게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할 국가가 이래선 안 된다. 정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어린 고교생과의 약속을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어겨선 안 된다. 국민 기본권 보호와 자유·복리 증진은 대통령의 헌법상 의무(제69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관련 정보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하겠다”며 30년간 비공개 의사를 밝힌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방침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뒤에도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에 집착한 결과는 대화 재개가 아니라, 새해 벽두 미사일 네 발 발사로 돌아왔다. 이젠 그런 미련을 버리고 사망 선고조차 받지 못해 장례도 치르지 못한 유족의 아픔을 달래줘야 할 때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을 지켜본 국민적 응어리도 함께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