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다주택자 세금중과가 애먼 지방 중소도시 부동산 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가족 거주용이나 세컨드 하우스용으로 지방에 주택을 보유한 서울 집주인들이 다주택자 규제를 피해 집을 팔겠다고 내놓으면서 매물이 쌓이고 시세는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9월 전남 무안(-1.62%) 경북 김천(-1.39%) 경남 사천(-0.97%) 등 지방 중소도시의 아파트값은 1% 안팎 폭락했다. 정작 잡겠다던 서울 집값이 같은 기간 1.97%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수요억제 위주 부동산 정책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부동산 정책의 모순이 드러난 곳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세시장은 더 심각하다. 정부가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며 지난 8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시행한 이후 전셋집 품귀와 전셋값 폭등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은행이 조사한 지난달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191.1로 2001년 8월(193.7) 후 19년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이 지수는 100보다 클수록 전셋집 공급 부족이 심하다는 걸 뜻한다. 수도권 지역에선 최근 2~3개월 사이 전셋값이 2억~3억원씩 오른 곳이 허다하고, 주거 불안에 잠 못 이루는 무주택자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이런 역효과를 초래한 것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졸속으로 대책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를 시장원리로 풀지 않고 서울과 지방, 1주택자와 다주택자, 집주인과 세입자 식으로 편을 갈라 정치적으로 접근한 탓이 크다. 그러다 보니 실거주 요건 강화, 다주택자 보유·양도세 인상, 임대차법 등 전·월세 공급은 줄이고 ‘똘똘한 한 채’에 수요자가 몰리게 하는 대책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 부메랑이 지방 부동산 시장 초토화와 전국적 전세 대란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의 부동산 문제는 “기필코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대통령의 말로만은 해결할 수 없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대책이 문제의 핵심인 만큼 부동산 정책을 근본적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 더 나은 곳에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어 하는 국민의 욕구를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공급 확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공급 확대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부가 시장에 확실한 정책전환의 신호를 보내고 무리한 수요 규제를 푸는 수밖에 없다. 여당 일각에서 보완책으로 제기하는 표준임대료 제도 도입이나 전·월세상한제를 신규 계약에도 적용하는 식으로는 자칫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모순은 순리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