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10월 발생한 5건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에 대해 조사한 민관합동조사단이 결국 배터리 결함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난해 6월 1차 조사결과 발표 때 “부실한 설치, 관리가 원인”이라고 했던 것을 1년 만에 뒤집었다. 조사단은 “1차 때 확보하지 못한 블랙박스(데이터 저장장치) 및 비슷한 기록이 있는 다른 배터리를 분석해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배터리업계는 물론 전문가들도 ‘못 받아들이겠다’는 분위기다. 최종 결과 발표 전부터 원인 제공자를 LG화학,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로 찍어두고 ‘짜맞추기식’ 조사를 벌인 흔적이 여기저기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배터리 이외의 ESS 구성요소인 전력변환장치, 운영시스템 등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결과를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조사결과 자체가 비과학적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조사단은 화재가 난 제품이 아니라 같은 시기에 제조된 다른 배터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조사단 결론이 맞다면 같은 배터리가 설치된 ESS에서 모두 불이 나야 하는데 지난해 11월 이후 어느 곳에서도 화재는 없었다”는 게 업계의 반박이다.

전기차와 ESS 등에 장착되는 배터리는 반도체에 이어 한국을 대표할 ‘차세대 먹거리’로 떠올랐다. 그러나 ESS 배터리는 지난해 조사가 시작된 이후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이 급감하는 등 타격을 받고 있다. “이번엔 아예 화재의 주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에 점유율 추가 하락은 정해진 수순”이란 관측이 나온다.

‘통계 분칠’,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 정부 들어 일상화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 국가 운영은 국가 경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ESS 화재 조사는 ‘답정너’식 국가운영의 또 다른 사례로 의심받을 만한 개연성이 충분하다. 미래 먹거리에 흠집을 내놓고 이번에도 ‘나 몰라라’ 뒷짐 지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