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02 월드컵'은 우리의 역사가 되었다. 산 역사가 되어 우리에게 질문한다. 삶의 곁으로 내려와 우리의 온 몸을 감싸주는 저 태극 응원의 힘은 어디서 왔는가. 눈물로 노래로 깃발로 온 땅을 출렁케 하는 저들은 누구이며,그들의 '하나 같은 힘'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그 힘은 놀이문화나 잔치문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는 현상 아닌가.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잔치놀이는 더 진하고 화려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개념으로 우리 7백만에 달했던 역동적 힘을 설명해 내지 못한다. 그 힘을 두 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장구한 침탈 역사에서 축적된 고난극복 정신에서,또 하나는 세계 스포츠맨들이 지닌 휴머니즘의 가치인 인간주의적 비전을 나누는 기쁨에서 그 힘의 원류를 추적할 수 있다. 첫째,우리의 기나 긴 역사는 실상 외부 침략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 때마다 우리는 그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다시 싸우며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타국인들과 세계인들과의 대치과정에서 우리는,그 때만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가 따로 없이 '하나'로 단결했다. 월드컵 때 이 땅을 밟는 '선의의 적'들이 하나씩 날아 올 때,바로 그 때부터 우리는 저 세계인들에 대해 '선의의 대결 의식'이 일기 시작했다. 게임으로 엉키며 넘어지며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머리를 휘날리며 저 평원을 달리던 옛 조상들의 기상을 그리면서 얼싸 안고 함께 응원하며 싸웠다. 둘째,스포츠란 인간주의 가치로 표현되는 육체적 시이며 노래이며 드라마가 아닌가. 축구란 그 자체가 인간들의 한계와 가능성을 그어주는 일종의 시련의 장이기도 하다. 축구게임은 그 운영과 철학,전술과 논리를 통해 자기 나라 국기와 문화를 세계에 은은히 표현하는 전시의 장이기도 하다. 스포츠란 인간주의적 가치와 정신의 발로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는,'나'는 그 어떤 정치적 관객이 아니라 주역임을 발견한다. '나'나 '너'나 우리는 다 같이 인간 그 자체가 지니는 멋과 아름다움과 가치가 따로 있다는 것을,그리고 그 가치가 그 어떤 다른 제도의 가치들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인간이 벌이는 스포츠 그 자체에,게임 그 자체에 정치·경제가치 못지 않은 동등한 가치와 기쁨이 있음을 깨닫는다. 깨달음의 지식이 못되는 문자위주인 책가방 '지식문화'의 짐도 벗어 보았다. 환희와 함성,외침과 눈물과 포옹으로 기(氣)를 뿜는 순간이었으며,끝내 저 붉은 바다위를 보석처럼 반짝이게 하는 태극기 응원문화가 탄생됐으리라고 유추해 본다. 인간주의의 신념이란 특별한 게 아니다. 제도도, 인간문화, 교과서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깨달음의 '지식문화'로 변혁하는 그 순간 이미 우리는,우리 젊은이들은 휴머니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역사가 된 월드컵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로 향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인에 대한 전통적 대결의 강박관념 때문에 세계화를 잘못 이해한다. 언어와 인터넷,과학과 기술을 연마하라,그리고 세계에 침투해 돈 잘 벌어라 하는 식으로 해석하기 쉽다. 세계화란 세계의 가치관과 문화를 우리 인간활동의 대동력으로 삼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번엔 과학이 아니라,경제가 아니라 스포츠가 이 사회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역사란 좋은 것만 선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월드컵 응원은 우리 개개인의 자신과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는 훌륭한 계기도 된 반면,이 개개인의 활력소가 향후 1년 5년 10년을 지나면서 그만 비뚤어진 정치무시 사회무시 문화를 낳지 않을까 두렵다. 이제 '정치란 우리가 세계와 선한 문화게임을 해야 하는 비전'에 두어야 한다. 이 시대는 관광문화도 중요하지만,가치문화 의식문화 정신문화 태극문화를 세계화의 맥락에 접속,체계화해야 한다. 우리 문~화대국은 그런 문화정책이 전혀 없이 살았다. 아름다운 문화의 물꼬가 터졌으면 한다. tashan21@hanmail.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