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50년을 기념하는 "들을거리""볼거리""생각할거리"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조촐한 겉모양에 진지함을 담아 제공되는 "거리"들도 많으련만 대형빌딩에
일제히 내걸린 커다란 걸개(현수막)처럼 규모가 크고 화려한 "거리"들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아닌지..

엄청난 물량공세에 압도당하면서 흥겨워하는 사람들속에서 적지않게
가슴을 짓누르는 아쉬움을 떨칠수없다.

화려한 외양에 걸맞는 실속을 바랐던 마음과는 달리 광복50주년을
기리는 본뜻이 무엇인가를 되묻게하는 행사들이 적잖이 눈에 밟혔던
까닭이다.

그 여럿중에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두어마디 하고 싶다.

"겨레의 노래"라고 이름붙인 TV프로그램이 있었다.

프로그램 이름만 보고는 지레 이런 기대를 했다.

"5천년 한민족의 역사를 면면이 감당해오다 일제시기이후 형편없이
훼절당해 본색조차 찾기 어려워진 민요이야기를 하려나보다.

그럼! 광복50년을 기념하는 자리니 한번 해봄직한 기획이지"싶었다.

하지만 웬걸,그것은 트롯풍의 가요를 위한 2시간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몇년전부터 트롯풍의 대중가요를 전통가요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이것이 겨레의 노래가 되는구나 싶어 정말
아찔했다.

또 광복절 저녁에는 6만여 청중들이 운집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야외축전무대에서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이 열렸다.

국가기관인 문화체육부,공영방송과 큰 신문사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 자리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음악인들을 한자리에 모은
어마어마한 음악축전이었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을 맛보지 않은 이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들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가슴뿌듯한 순간이었다.

독립지사 이준선생께서는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나라가
아니고,국토가 작고 사람이 적어도 큰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는데 정말 넓지않은 강토에서 이렇게
훌륭한 음악인들을 키워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런데 "세계를 빛낸 한극음악인 대향연"의 자리에 어떻게 "양악 잘한
이들"만을 모셔왔을까.

광복5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아리아가 잠실벌을
뒤흔들고 공영방송의 전파를 타고 전국을 뒤덮는가 싶어 씁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정명화가 첼로로 "한오백년"을 연주하고 정경화가 바이올린으로
"우리의 소원"을 켰으며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모든 출연자들이
애국가를 합창해도,또 정명훈이 두루마기 자락을 날리며 지휘를 해도
그 쓴맛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어느 일간지에서 "이들의 레퍼토리가 한결같이 베르디
오페라 아리아로 정해진 것은 민족정신을 통해 애국사상을 고취한 베르디
음악사상의 일면을 광복50주년이라는 역사성에 간접 조명해보며 이번
축전의 의미를 더일층 강조한 의도"라며 감격한 한 시인의 소감을 보았다.

이탈리아 음악가의 민족정신으로 우리의 광복50주년을 간접 조명할만큼
우리의 음악감성이 세계화되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광복을 쟁취하고 그 기쁨을 누리며,그 자리에서 통일조국의 염원을
기리는 "우리의 얼"이 이렇게 화려한 무대위에서,또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감성속에서 소리없이 방황하는게 보였다면 소견좁은 이의
고루한 안목이라 흠잡힐 일일까.

"힘있는 나라가 무력으로 다른나라를 침략해 말과 글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그 민족의 노래는 뺏을수없다"는 말을 남긴 금세기의 음악학자가
있었다.

그는 아마도 노래에 담긴 민족의 영혼과 얼을 보았던 것이리라.

이번 광복50주년을 기리는 풍성하고 화려한 여러 "볼거리""들을거리"를
대하면서 그 음악학자의 말을 한층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