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울려대는 블랙베리 폰의 이메일 도착 알람에도 온몸에 넘쳐흐르는 여유. 그랬다. 오랜만에 찾은 한정식집이라며 서울 서초동 ‘예촌’에 들어서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67)의 표정에는 시간을 쪼개 쓰는 최고경영자(CEO)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푸근함이 담겨 있었다.

윤 회장은 이미 한바탕 인터뷰를 치르고 온 터였다. 예정 시간보다 10분가량 지각(?)한 윤 회장은 악수를 하면서 말을 꺼냈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케이스 스터디(사례연구)로 휠라와 아큐시네트를 다루고 싶다잖아요. 그래서 인터뷰 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2007년 휠라 본사를 한국 회장이 인수한 것도 당시엔 큰 이슈였지만, 지난해 골프용품 세계 1위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큐시네트를 한국 기업이 사들인 것은 하버드대에서도 ‘스터디’해볼 만한 인수·합병(M&A) 사례였던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진이 윤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 능력은 물론 회사 현황을 모두 꼼꼼하게 취재한 뒤 강의 교재를 만들 예정이다. 이 과정에만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윤 회장은 설명했다.

건강관리 비법부터 M&A 뒷얘기 등 궁금한 게 많았다. 순두부와 삼합을 좋아한다는 윤 회장은 천천히 조금씩 먹었다. 그는 기업을 이 정도로 키우기까지 평생 오전 7시에 출근했고 하루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일에만 매달려 왔다며 인터뷰 내내 ‘열정’을 강조했다.

▶아큐시네트를 인수한 것은 국가적인 경사였습니다.

“물론 큰 일이었죠. 지금은 오로지 계약 조건에 충실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2015년 말까지 ‘법인세·감가상각·이자비용 차감 전 이익’(EBITDA)을 2배로 만들어야 돼요. 2011년 3월부터 2012년 2월 말까지 1년간 실적보다 딱 2배를 하겠다는 조건을 걸었어요. 안 그러면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걸 잃어요. 또 하나는 2016년 초 홍콩 증시에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수익률이 15% 이상은 나와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야 투자자들이 만족할 테니까요. 지금 상태로 봐서는 수익률이 대체로 19% 정도는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부담이 컸을 텐데요.

“사실 모든 걸 다 걸고 베팅한 데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지 않았겠어요?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죠. 지금 아시아 마켓이 팽창하고 있고 중국도 크게 성장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제가 달려들어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말이죠. 두고 보세요.”

▶추가로 M&A할 계획이 있습니까.

“지금은 할 수 없어요. 아큐시네트를 인수할 때 계약 조건에 명시돼 있었죠. 2015년까지 다른 딜은 할 수 없게 돼 있어요. (홍콩 증시에) IPO(기업공개) 끝날 때까지는. 사실 하자고 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아요. 근데 제가 국내 기업에 대한 M&A는 전혀 해보지도 않았고 잘 모릅니다. 글로벌 M&A는 제가 잘 알아요. 저는 맨 처음 협상 단계랑 매니지먼트 단계에서 강해요. 그래서 돈을 버는 거죠.”

▶아큐시네트를 인수한 뒤 어느 사업군이 더 수익률이 좋은가요.

“클럽이 제일 잘 되고 있어요. 작년 초에 내놓은 드라이버, 페어웨이우드도 좋았고 11월에 새 아이언을 출시한 것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또 하나는 골프화 풋조이에서 새로 내놓은 어패럴(의류)이에요. 지금은 풋조이에서만 어패럴을 내놨지만 내년 2월부터는 타이틀리스트에서도 론칭할 것입니다. 어패럴은 크게 봐서 피트니스센터에서 입는 옷과 운동 중에 입는 옷, 운동 뒤에 입는 평상복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운동 전과 운동 중에 입는 옷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럼 의류 부문도 핵심 사업으로 키우는 건가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어패럴 라인을 새로 내서 중국과 국내 시장을 키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태국 공장에서 만든 골프공을 아시아 지역으로 바로 수출해서 물류비용을 아끼는 거예요. 그런 아이디어가 없었으면 제가 미쳤습니까, 모든 걸 베팅하게요. 허허.”

▶어패럴은 어디서 생산할 계획입니까.

“처음엔 전량 다 한국에서 만들 것입니다. 나중에 물량이 많아지면 중국으로 옮기겠지만, 일단은 우리가 직접 모든 걸 다 관리할 거예요.”

▶골프 드라이버는 어느 브랜드를 쓰시나요.

“지금은 타이틀리스트의 VJ3 모델을 써요. 일본 아큐시네트에서 아시아를 겨냥해 개발한 모델인데 편해요. 로프트는 10.5도고요.”

▶요즘 컬러볼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컬러볼이 트렌드가 됐죠. 근데 컬러볼을 선호하는 계층은 여성들입니다. 하나의 패션처럼 여기죠. 전통적인 골퍼들은 컬러볼을 안 쓸 거라는 게 우리 판단이에요. 대세는 흰공이죠. 물론 포인트로 네온컬러는 하나쯤 만들 계획입니다.”

▶남자프로골프협회 회장 제의가 들어올 법한데요.

“없었어요. 난 그런 자리 안 좋아해요. 시간도 없고요. 대한체육회는 후원하고 있습니다. 배드민턴협회, 레슬링협회, 체조협회도 후원하고 있어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죠. 자, 이제 좀 식사하면서 합시다.”

▶얼마 전 서울대에서 강의하셨죠.

“네. 실패를 경험하라는 주제로요. 실패가 가르쳐주는 경험이 많잖아요. 기업가 정신이 뭐냐, 바로 도전정신이잖아요. 일반 회사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그냥 이대로 밥 벌어 먹고 살 건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더 좋은 방법대로 박차고 나가서 한번 도전해볼 건지 고민하잖아요. 열 명 중 아홉은 대충 타협합니다. 근데 열 중 하나는 미친 놈이 있어요. 한번 해보겠다고. 그게 바로 기업가 정신이에요. 결국 실패를 경험해야만 성공하는 법이죠. 저는 서울대에도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떨어졌고 해운공사에 1등으로 들어갔지만 안에서 얼마나 호되게 혼나면서 수없이 실패를 했다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겸손해지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면서 성실하게 도전하게 되죠.”


"기업가 정신 고취시켜야 빈익빈부익부 해결"

▶실패를 경험하기만 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고, 위험을 감수해야 성공할 확률도 높아지는 거예요. 그래야 다들 미친 듯이 도전하죠. 그건 사회와 국가에서도 인정을 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지금 ‘빈익빈 부익부’ 문제가 심각한데 이걸 해결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것입니다. 저처럼 농민의 아들도 국제적인 기업가가 될 수 있도록 키워주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거예요. 언론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경영자로서 지론이나 인생관이 있으시다면.

“정직해라, 성실해라, 페어플레이(공정경쟁)해라. 딱 3개입니다. 정직하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고 성실해야 돼요. 또 속이면 안 되고 솔직하고, 공명정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성공해요. 인터넷에서 난리를 칠 텐데. 이건 제 인생에서도, 사업에서도 기본철학입니다.”

▶회장님만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외국인과의 경험이죠. 이건 경험에서 나오는 거지 아무나 못해요. 첫째는 영어 구사력인데 단순히 의사표현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같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죠. 그들의 생각을 금방 캐치하고 바로 소통할 수 있어요. 또 하나는 사람. 지금까지도 꾸준히 저랑 일을 하는 대단한 친구들이 있어요. 휠라 미국 지사의 존 엡스틴 사장이랑 제니퍼 이스타브룩 부사장 두 사람이에요. 이렇게 셋이 뭉치면 세상에 못할 게 없다고 자부해요. 진정성을 갖고 도전하거든요. 성실한 건 기본이고요.”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청계산에 올라요. 주말에 한국에 있을 땐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부터 청계산엘 가죠. 겨울에는 골프 안 쳐요. 잘 맞지도 않고, 풀이 푸릇푸릇 할 때 나가야 좋잖아요. 제 와이프는 싱글이에요. 드라이버샷이 평균 220야드나 나가요. 와이프가 잘 치니까 내 기분이 좋아요.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잖아요. 사실 제 와이프가 아니었으면 문제가 많았을 거예요. 집에서도 잠도 안 자고 일만 하고 있으니깐요. 꼭 여러 번 불러야 밥 먹으러 가고 하는데, 누가 좋아해요. 다 이해해주니까, 고맙죠.”

윤 회장과의 인터뷰는 예정된 2시간을 훌쩍 지나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이 얘기한 걸 지키기 위해 얼마나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는지가 결과로 나타난다”며 끝까지 ‘열정’ ‘정직’ ‘성실’을 강조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문을 나섬과 동시에 윤 회장은 또다시 전화기를 들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차 안에 책과 서류를 가득 넣은 배낭이 실려 있었다.


윤윤수 회장의 단골집 예촌

서울서 즐기는 고향의 맛…해물순두부 등 찌개류 '담백'

서울에서 시골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토속’ 한정식집이다. 스스로 숨을 쉰다는 장수 곱돌로 오색약수돌솥밥을 지어준다.

10가지 이상의 푸짐한 밑반찬도 맛깔나고 시골된장찌개, 해물순두부찌개, 곱창김치찌개, 콩비지 등 찌개류가 담백하다.

죽 물김치 탕평채 샐러드 해물겨자채 잡채 전유화 불고기 북어구이 오색약수돌솥밥 등을 내놓는 점심특선은 1인당 1만5000원, 여기에 3000원을 보태면 매운 닭요리까지 맛볼 수 있다. 명절 당일만 쉬고 오전 11시부터 밤 11시30분까지 연중 무휴. 방 5개를 포함, 총 120석이 마련돼 있다. 양재역 1번 출구로 나와 하나은행과 금강제화 사이 도로를 30m 걸어가면 오른편에 있다. (02)525-0987

민지혜/한은구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