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오믹스(단백질체학) 기반 진단업체인 베르티스가 유방암 수술 후 국소 재발을 진단하는 예후 관찰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캔서 리서치 앤드 클리니컬 온콜로지'에 게재했다고 19일 밝혔다. 베르티스는 유방암과 관련이 있는 세 가지 단백질 바이오마커(생체 표지자)를 질량분석기로 정량 측정해 그 값을 자체 알고리즘에 대입, 유방암을 조기 진단하는 '마스토체크'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유전자보다 단백질 발현으로 질병을 파악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게 프로테오믹스의 기본 개념이다. 일란성 쌍둥이도 유전자가 아닌 단백질 발현에 따라 질병 발생이 다르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세 가지 단백질은 CA1(carbonic anhydrase1), NCHL1(Neural cell adhesion molecule L1 Like protein), APOC1(Apolipoprotein C1)이다. CA1은 세포 내외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유방암에 걸리면 혈장 내 발현량이 높아진다.NCLH1 역시 종양 성장과 전이에 관련된 단백질이고 APOC1은 유방암에서 혈중 농도가 낮아진다. 에 단백질 모두 베르티스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마스토체크 검사 결과 일정 수치(0.0668) 이상이 나오면 혈액에서 특정 단백질이 유의미하게 변했다는 걸 의미한다.베르티스가 이번에 게재한 논문의 골자는 '마스토체크'가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의 국소 재발을 조기에 진단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스토체크는 0~2기 유방암 조기진단 의료기기로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받았다. 베르티스는 국소 재발의 조기 진단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유방암 환자 300여명을 평가 대상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들을 2개 집단(코호트)으로 구분했다.첫 번째 코호트는 수술 전 유방암 진단 때부터 수술 후 일정 기간까지 마스토체크 검사로 정기적인 추적 관찰을 한 환자군이다. 그 결과 베르티스는 수술 전보다 수술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스토체크로 측정한 바이오마커 결과값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감소하는 걸 확인했다. 이는 마스토체크가 기존처럼 유방암 조기 진단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두 번째 코호트가 핵심이다. 코호트2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지 1년 이상 지난 환자들로 구성했다. 이 중에서도 재발이 확인된 환자와 재발이 없는 환자(건강한 상태)로 나눠 마스토체크 검사를 했다. 코호트2 대상으로는 현재 유방암 수술 후 경과 추적용 검사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CA15-3' 검사도 병행했다. 마스토체크의 진단 성능과 비교하기 위해서다.CA15-3 검사는 3개 바이오마커 기반인 마스토체크와 달리 단일 바이오마커 기반 혈액검사다. 분석 결과 마스토체크는 국소 재발 여부를 71.5% 정확도로 진단했다. 재발 환자를 재발했다고 제대로 진단하는 비율인 민감도는 60.3%가 나왔다. 재발하지 않은 사람을 재발하지 않았다고 진단하는 비율인 특이도는 80.2%였다.마스토체트가 유방암 0~2기 조기진단용으로 허가받았을 때의 민감도는 71.6%, 특이도는 85.3%다. 베르티스 관계자는 "국소 재발 조기 진단에도 마스토체크가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베르티스에 따르면 마스토체크와 병행한 CA15-3 검사에서는 재발 환자의 98.4%가 정상이라고 나왔다. 회사 측은 "국소 재발을 진단함에 있어 마스토체크가 CA15-3 검사보다 우월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주도한 김유미 강남차병원 교수는 "유방암 재발 조기진단은 중요하다"며 "보다 개선된 검사법에 대한 요구가 크다"고 말했다.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국소 재발 조기진단 등 유방암 수술 환자 예후 관리에 있어 다중 바이오마커 기반 혈액검사의 활용 가능성이 확인됐다"며 "임상 연구를 통해 유용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색하겠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몸속 단백질의 구성과 양의 변화를 분석하는 프로테오믹스 기술이 진단 및 신약 개발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혈액으로 암을 조기 진단하거나 신약의 표적이 되는 새로운 단백질을 발굴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김상태 베르티스바이오사이언스 최고기술책임자(CTO·사진)는 22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한경바이오인사이트포럼’에서 “세계 프로테오믹스 시장은 올해 217억달러(약 29조4600억원)에서 10년 뒤인 2032년엔 1162억달러(약 157조7400억원)로 다섯 배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며 “프로테오믹스와 진단, 정밀 의료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단백질체학’이라는 뜻의 프로테오믹스가 단백질에 주목하는 까닭은 우리 몸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유전학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학에서 다루는 유전자가 설계도라면 단백질은 완성품인 셈이다. 설계도만 봐선 알 수 없던 문제점을 완성품인 단백질을 검사해 찾아내는 식이다.베르티스는 프로테오믹스 기술을 암 진단에 적용하고 있다. 유방암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단백질 변화를 탐지하는 마스토체크라는 진단 서비스를 2019년 출시했다. 엑스레이로 유방을 촬영하는 기존 진단법의 정확도는 71.3%에 그치는데 이를 마스토체크와 병행하면 87.1%로 높일 수 있다.김 CTO는 “프로테오믹스는 유전학과 후성유전학, 대사체학(메타몰로믹스) 등 다른 학문 및 기술과 통합될 것”으로 내다봤다. 설계도(유전학)와 완성품(프로테오믹스)뿐 아니라 사후 관리(대사체학)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면 더 정확한 진단과 신약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역사상 지금처럼 알약을 많이 복용하는 시대는 없었다. 미국인 중 절반은 정기적으로 약을 처방받고 1년에 최소 네 가지 항생제를 먹는다. 노인들은 하루에 10알씩 복용한다. 통계적으로 평생 알약 5만 개가량을 몸에 밀어넣는 셈이다.”미국 과학저널리스트 토머스 헤이거가 쓴 《텐 드럭스》에서 소개한 알약 복용 현황이다. 항생제를 비롯해 건강기능식품, 영양제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누구나 의심없이 알약을 입에 털어 넣지만 정작 발전 과정은 모른다.이 책은 아편, 피임약, 항암제 등 의학 역사상 대표적인 의약품 10가지를 중심으로 ‘약 권하는 사회’가 어떻게 도래했는지 설명한다.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이 약물을 확산시켰다”고 말한다. 부작용이 하나도 없는 ‘마법의 약물’을 개발하겠다는 꿈이다. 저자는 “인류는 끝없이 질병만 파괴하는 의약품, 즉 특효약을 내놓으려 했다”며 “전지전능한 약물은 단 한 번도 개발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신약 개발이 꾸준히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면서 허위·과장 광고를 하거나 약물 규제 법률을 피하는 편법 행위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19세기엔 누구나 처방전 없이 아편, 대마초 등 향정신성 약물을 구했다. 20세기 들어 부작용을 우려해 각종 규제와 감시기관이 생겼고, 제약사는 약의 안정성과 효능을 증명해야 했다. 저자는 “빅파마(세계적 제약회사)들이 수조달러를 벌어들이는 배경엔 규제와 갈등이 있다”고 주장한다.의약품 관련 정보의 비대칭성도 짚는다. 저자는 “1880년대만 해도 의약품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며 “이제는 의사들 처방 없이는 약물을 투여받지 못한다. 환자들은 그저 새로운 관행을 따라갈 뿐”이라고 말한다.하지만 저자는 의약품의 발전 방향이 긍정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그는 “알약은 인류 성장을 이끌었다. 평균 수명을 늘리고 전염병을 막았다. 신약 개발은 이제 공공선을 실행하는 도구로 정의내려야 한다”고 역설한다.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