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바로미터는 신약이다.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하는 것만큼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최근 5년간 미국 제약사들의 신약 승인 성적은 엇갈렸다. 가장 많은 신약을 허가 받은 곳은 노바티스였고 신약의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은 로슈였다.
[글로벌 핫뉴스] 빅파마의 신약 성적표

‘알짜 신약’ 개발 집중한 로슈

이밸류에이트파마는 최근 5년간 3개가 넘는 신약을 허가받은 빅파마의 신약 성적표를 분석했다. 지난해와 올해 사용이 크게 늘어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는 제외했다. MSD의 키트루다 같은 블록버스터도 2016년 이전에 허가받아 분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반영해 최근 5년간 가장 성적이 좋았던 제약사는 로슈였다. 2016년부터 5년간 개발한 8개 신약의 가치는 997억7000만 달러에 이른다. 로슈의 전체 의약품 포트폴리오에서 이들 8개 신약이 차지하는 비율은 45.9%다. 2016년 출시한 최근 면역관문억제제 티센트릭은 395억 달러 가치로 평가받았다.

2019년에는 삼중음성유방암 치료를 위한 첫 면역관문억제제로 승인받았다.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인 오크레버스도 가치가 높은 신약 중 하나다. 2017년 3월 허가받은 이 약의 가치는 272억 달러다. 세베린 슈완 로슈 최고경영자(CEO)는 이 약을 “로슈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출시”라고 평가했다. 올해 상반기 오크레버스 매출은 26억5000만 달러다. 지난해 출시한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인 에브리스디도 88억 달러 가치로 평가받았다.

애브비는 양보다 질에 집중한 제약사로 꼽혔다. 5개 신약을 허가받았는데 이들의 가치는 764억 달러로 11개 제약사 중 2위를 차지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린보크가 339억 달러, 스카이리지가 242억 달러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애브비는 올해 이들 두 제품으로 46억 달러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블록버스터인 휴미라는 2023년 특허가 종료된다. 린보크와 스카이리지를 통해 애브비는 휴미라 특허종료 후에도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이밸류에이트는 분석했다.

2012년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라는 악재 속에서 신약 기업으로 다시 도약한 아스트라제네카가 빅파마 신약 성적 3위에 올랐다. 최근 5년간 허가받은 신약 5개의 가치는 455억3000만 달러다. 2017년 허가 받은 면역관문억제제 임핀지의 가치는 223억 달러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제 칼퀀스의 가치가 149억 달러로 뒤를 이었다. 이들 치료제는 모두 2017년 허가받았다.

일라이릴리도 오래된 블록버스터 의존도를 낮추고 신약 개발에 집중하면서 혁신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8개 신약의 가치가 380억5000만 달러로 4위를 차지했다. 유방암 치료제 베르지니오의 가치가 171억3000만 달러다. 노바티스는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12개 신약을 승인받았다. 이들 신약의 가치는 376억5000만 달러로 5위다.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 가치가 79억5000만 달러다. SMA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지난해 매출 9억2000만 달러였다. 노바티스는 2세 이하 SMA 치료 용도로 허가받은 이 약의 적응증을 5세로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GSK 신약은 7개 허가받았는데 이들의 가치는 301억6000만 달러다. 대상포진 백신인 싱그릭스 가치가 183억 달러로 가장 높다. 존슨앤드존슨의 5개 신약 가치는 242억6000만달러다. 판상형 건선 치료제 트렘피어가 120억 달러로 평가 받았다. 화이자는 7개 신약을 허가받았다. 신약 가치는 174억1000만 달러다. 심근병 치료제 빈다켈 가치가 106억1000만 달러로 화이자 신약 중 가장 높다. BMS는 2016년 이후 154억9000만 달러 가치인 신약을 3개 허가받았다. 사노피는 신약 6개를, 머크는 9개를 각각 허가받았다.
[글로벌 핫뉴스] 빅파마의 신약 성적표

유전자 편집 파이프라인 확대한 로슈·버텍스

올해 6월 인텔리아와 리제네론이 생체 내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치료제의 가능성을 보여준 뒤 유전자 편집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제약사들의 공동개발 계약이 잇따랐다.

로슈는 스위스 제약사인 셰이프테라퓨틱스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을 고치기 위한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계약규모는 최소 30억 달러다.

2018년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를 기반으로 창업한 셰이프는 DNA를 직접 편집하는 대신 RNA를 편집하는 방식으로 신경계 질환과 희귀질환을 고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다. 아데노신을 이노신으로 치환하는 RNA 편집 효소를 활용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유전자 편집 효소를 잘 전달하기 위한 아데노바이러스벡터 기술도 갖고 있다. 셰이프는 2019년 11월 첫 라운드 투자에서 3550만 달러를 모금했다. 올해 7월 시리즈B를 통해 1억1200만 달러 투자를 받았다.

로슈는 2019년 스파크테라퓨틱스를 48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유전자 치료제인 럭스터나와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를 품에 안았다. 럭스터나는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다. 스파크는 안 질환은 물론 간, 중추신경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로슈는 지난해 10월 다이노테라퓨틱스와 중추신경계 치료 협약을 위한 18억 달러 규모 계약도 맺었다. 다이노는 아데노바이러스벡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스파크의 유전자 치료제 효과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버텍스는 아버바이오테크놀로지와 12억 달러 규모 유전자 치료제 공동개발 계약을 맺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술을 보유한 아버는 생체 외(ex vivo) 편집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다. 버텍스는 2018년부터 아버와 함께 낭포성 섬유증 치료제 등을 개발해왔다. 추가 협약에 따라 버텍스는 아버와 7개 프로그램을 함께 연구할 계획이다. 1형 당뇨병 치료제, 베타 지중해성 빈혈 치료제 등에 집중할 방침이다.

버텍스는 크리스퍼테라퓨틱스와 낫적혈구병과 베타 지중해성 빈혈 치료제인 CTX001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낫적혈구병은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혈색소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다.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해 악성 빈혈이 생긴다. 미국에선 흑인 환자에게 많다. 낫 모양으로 바뀐 적혈구가 모세혈관을 막아 혈액 흐름에 문제가 생기고 내장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기도 한다. 뇌경색이나 담석증, 골관절염, 면역기능 저하 등의 합병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베타 지중해성 빈혈은 몸속에서 헤모글로빈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성 질환이다. 아버와의 협력을 통해 버텍스는 이들 질환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흡입제 회사 잇달아 인수한 필립모리스

담배 회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립모리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7월 흡입제형 약물을 개발하는 벡투라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흡입형 아스피린을 개발하는 오티토픽도 인수키로 했다. 오티토픽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필립모리스에서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오티토픽은 아스피린의 성분인 아세틸살리실산을 흡입제로 개발하는 회사다. 흡입형 아스피린이 개발되면 이들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업체 측은 내다봤다.

아스피린은 혈액이 뭉쳐져 피떡(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는 약이다. 기존 먹는 아스피린은 몸속에 들어간 뒤 20분 정도 지나야 혈소판이 뭉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흡입제형 아스피린은 2분 안에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근경색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에어로졸 형태의 아스피린 흡입제를 개발해 내년 승인받는 게 목표다. 필립모리스의 최고생명과학책임자는 “미국에서만 40초마다 한 명씩 심장마비를 호소한다”며 “아스피린 흡입제를 개발하면 기존 치료제보다 빠르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심장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80만 명에 이른다. 이 중 20%는 담배가 원인이다. 필립모리스는 말보로 등 담배 제품 외에서 얻는 매출을 2025년까지 10억 달러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비욘드니코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필립모리스가 흡입제 회사 인수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필립모리스는 12억 달러에 영국 제약회사 벡투라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벡투라 측은 배당금 등을 포함해 전체 거래 규모가 14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앞서 칼라일도 벡투라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필립모리스가 제시한 금액은 칼라일이 제시한 금액보다 10%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벡투라는 13개 흡입제와 11개 비흡입제를 보유한 영국 제약사다. 지난해 매출은 2억4500만 달러다. 벡투라 인수 후 호흡기 환자를 위한 흡입제는 물론 일반의약품 시장에서도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필립모리스는 내다봤다.

필립모리스는 벡투라에 앞서 덴마크 제약사 퍼틴파마도 813만 달러에 인수했다. 의료용 껌 등을 개발하는 회사다. 직원은 860명이다. 퍼틴파마 인수를 통해 필립모리스가 니코틴 껌 등 금연 제품 출시를 확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필립모리스는 “퍼틴파마 플랫폼을 활용해 숙면, 집중력 향상 등을 돕는 셀프케어웰니스(self care wellness)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핫뉴스] 빅파마의 신약 성적표

캐털란트, 베테라 인수로 비타민 시장 진출

글로벌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업체인 캐털란트가 젤리 제형의 영양제를 만드는 회사 베테라를 10억 달러에 인수한다. 거래는 4분기 말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텍사스에 본사가 있는 베테라는 캘리포니아와 인디애나, 뉴저지, 버지니아 등 네 군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은 500명이다. 베테라는 젤리, 추어블 형태의 비타민과 영양제를 만드는 회사다. 지난해 매출은 1억5000만 달러다.

어린이를 위한 영양제로 판매되던 젤리 형태의 비타민제는 최근 성인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린 시절 추어블 영양제를 먹던 세대가 성장해 성인이 되면서다. 세계 젤리형 비타민제 시장은 2018년 57억 달러에서 2026년 93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약을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수요가 높다. 캐털란트는 베테라 인수를 통해 다양한 제형의 비타민제와 영양제 등을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외에 소비자들이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컨슈머헬스 제품군을 확대할 방침이다.

뉴저지주 서머싯에 있는 캐털란트는 코로나19 백신 수요가 늘면서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이 캐털란트에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맡겼다. 지난해 캐털란트 매출은 31억 달러였다. 팬데믹 선언 후 주가는 두 배 이상 급등했다. 휴머니젠의 단일클론항체치료제인 렌질루맙 생산 계약도 맺었다.

캐털란트는 그동안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분야의 기업이나 공장을 인수하는 데 집중해왔다. 올해 6월 유도만능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독일의 라인셀을 인수했다. 커타나의 교모세포종 치료제 후보물질인 CT-179도 공동개발하고 있다. 앞서 2019년엔 파라곤바이오서비스를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파라곤은 유전자 치료제를 정확한 곳으로 전달하는 바이러스벡터를 만드는 회사다.

코로나19로 개인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컨슈머헬스 기업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비타민제, 영양제, 건강기능식품 분야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하다. 네슬레는 올해 4월 바운티풀의 영양제와 건기식 브랜드 상당수를 57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네슬레는 이 계약을 통해 내추어스바운티, 솔가, 퓨리탄스프라이드 등 비타민과 건기식 브랜드를 대거 보유하게 됐다. 유니레버도 영양제 등을 판매하는 온닛을 인수했다. 온닛은 뇌기능 기억력 개선 제품군인 누트로픽스 분야 제품을 출시했다. 집중력 향상을 위한 두뇌 보충제 ‘알파 브레인’ 등이다.

이지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