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차오양공원 서문 인근의 대형 쇼핑단지 솔라나(藍色港灣).지난 16일 일본 상품을 전문으로 파는 이곳 지하 1층 슈퍼마켓은 여느 때와 달리 한산했다. "인터넷에서 일본에 원자폭탄을 터뜨리자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길에 나오겠느냐." 이곳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반일(反日)로 연일 펄펄 끓고 있다. 댜오위다오(釣魚島 · 일본명 센카쿠 열도 · 사진) 해역에서 지난 7일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에 나포된 게 도화선이 됐다. 중국 고위 당국자가 일본 방문을 전격 취소하고 다음 주 유엔총회에서 열기로 한 양국 정상회담도 무산됐다. 베이징의 일본대사관 앞에선 반일 시위가 이어지고 인터넷에선 네티즌들이 '타도 일본'을 외친다.

특히 18일은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만주사변이 발생한 지 79년째 되는 날이다. 중국의 여러 단체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일본 정부기관 해킹,댜오위다오 상륙 시위 등을 개시할 것이라고 벼르는 중이다.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으로 중국 전역에서 일본 자동차가 뒤엎어지고 일본 공관에 돌멩이가 투척됐던 2005년의 '반일궐기'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주중 일본대사관은 교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다섯 차례 일본 대사 부른 중국

중국은 일본에 대해 전례가 없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16일까지 9일간 다섯 차례나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여덟 차례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외교라인의 최고 수장인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일요일인 12일 자정에 일본 대사를 불러 면담했다. 중국 환구시보는 "이는 단순한 항의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리젠궈(李建國)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 의회 격) 상무 부위원장은 이달 중 일본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이달 말 유엔총회에서 열기로 한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 원자바오 중국 총리 간 정상회담도 무산됐다.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 개발을 위한 양국 회담도 무기 연기됐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일본이 2006년부터 이어온 '봄날 외교'는 끝장났다고 지적했다. 2005년 방일 중이던 우이 중국 부총리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취소하고 전격 귀국,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상황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우이 부총리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올해도 신사참배를 계속하겠다"고 말하자 그 다음 날 귀국해버렸다. 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06년 10월 중국을 방문,관계 개선의 물꼬가 터졌다. 2008년 5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까지 네 차례 양국 정상 상호 방문이 이어지며 '놘춘(暖春 · 따뜻한 봄) 외교'가 이어졌다. 베이징의 한 외교전문가는 "양국의 짧은 밀월은 댜오위다오 사건으로 일장춘몽으로 끝났고 지금은 사실상 총만 안 든 전쟁 상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18일이 D데이

18일이 다가오면서 '류탸오후(柳條湖)를 잊지 말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일본은 1931년 9월18일 랴오닝성 선양의 류탸오후에서 철로를 고의로 폭파한 뒤 중국 측이 도발했다고 뒤집어씌워 중국 침략의 구실로 삼았다. 8일 베이징 일본대사관 앞에서 '댜오위다오에서 일본은 물러가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집회를 연 중국 시민단체인 댜오위다오 보호연합회는 "18일 반일 집회를 주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발적 시위가 일어날지는 모르겠다"고 말해 어떤 형태로든 집단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홍콩과 대만에서도 일본 규탄 집회는 물론 배를 타고 댜오위다오로 직접 가서 벌이는 상륙 시위가 예정돼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화교들의 시위가 계획돼 있어 전 세계적으로 중국인들의 반일운동이 벌어질 조짐이다.

중국 최대의 해커 조직인 '중국헤이커연맹'은 홈페이지를 통해 18일 일본 정부기관 웹사이트에 대한 공격을 선언했다. 네티즌들은 "중국의 해군력을 시험할 때" "소일본은 댜오위다오에서 꺼져라" 등의 자극적인 말로 반일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중국 공안은 대규모 시위에 대비,주요 일본 시설에 대해 '특별 경계령'을 내렸다. 그러나 톈진에선 12일 일본 학교에 쇠구슬이 날아들었고,대만에선 일본교류기금회 앞에서 100여명의 시위대가 생선을 던지고 일본 국기를 찢는 등 중화권의 반일 감정은 이미 한껏 고조된 상태다. 베이징의 일본 학교는 반일 시위를 우려,당초 18일 개최하기로 예정돼 있던 가을운동회를 다음 달로 연기했다.



◆강대강의 셈법,앞으로 어떻게 되나

일본과 중국은 강공 일변도다. 일본은 나포한 어선의 선원 14명을 풀어줬지만 선장은 국내법을 적용해 구속했다. 16일엔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이 사건 발생지 인근의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섬을 찾아 해안경비대원들을 격려했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중국 선박 나포 사건이 발생한 이틀 뒤인 9일 "중국의 일본 채권 매입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며 일본 내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했다. 중국의 일본 국채 매입은 올 들어 2조3000억엔 규모에 달했다. 지난 7월에만 전월보다 1267억엔 늘어난 5831억엔어치를 순매수했다. 일본은 지난달 전투기를 동원,규슈 오이타현에 있는 히주다이연습장에서 '적의 공격에 대비한 섬 수호 및 탈환 훈련'을 공개적으로 실시하기도 했다.

일본이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최근 남중국해와 한국 서해에서의 군사훈련 분쟁 등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한 외교전문가는 분석했다. 미국이 일본을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인근에 해저자원이 풍부한 것도 일본이 물러서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중국은 핵심 이익 지역으로 꼽고 있는 댜오위다오에 대해선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양측의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