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준 교수 "재정 훼손 방지할 독립적 재정준칙위 필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처럼 법적 독립성이 보장된 재정준칙위원회를 만들어 근시안적 재정정책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김인준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사진)는 11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으로 재정을 훼손하면 경제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한 경제 위기를 깊이 있게 분석한 원로 경제학자다. 경제 위기와 국제경제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그의 《국제금융론》은 경제학도는 물론 고시생의 필독서로 통한다. 한은 금통위원, 국민경제 자문회의 부의장 등으로 활동하며 상아탑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정책 설계에도 참여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과열과 소득 양극화, 구조적 저성장 문제가 겹치면서 한국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이 같은 위기를 짚고 대응책을 담은 책 《위기의 한국 경제》를 펴냈다. 김 교수는 경제 위기의 뇌관인 부동산 시장 연착륙과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재정준칙위원회에 금통위와 같은 권한을 주고, 여야에 위원 선출권 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련한 재정준칙에 대해서는 “작년 9월 발표한 정부의 중장기 재정 계획을 보면 2024년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5% 후반으로 확대해 운영하는 내용”이라며 “돌발사태가 터지면 적자폭이 더 커질 수 있어 재정준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다고 평가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내놓은 서울 아파트매매가지수는 2017년 7월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 4월 164.9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에 집값이 평균 65% 뛰었다는 의미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순자산 비율은 2017년 말 7.8배에서 지난해 말 9.2배까지 치솟았다. 김 교수는 “실물경제 대비 자산시장이 과열됐다”며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과열된 상태에서는 작은 충격에도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고 했다.

집값 과열의 배경으로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꼽았다. 그는 “정부가 시장 가격 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수요 억제로 일관한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집값 과열을 불렀다”고 진단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부동산 정책은 의도와 다르게 소득·자산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며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로 고용을 줄였고, 그 결과 소득분배는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이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는 ‘출구전략’에 나서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나서고 한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추진하면 과열된 부동산 시장이 조정 계기를 맞을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 거품이 터지면 경제 위기로 직결되는 만큼 집값을 연착륙시키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값 연착륙 방안에 대해서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는 동시에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해법”이라며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서울 및 수도권 택지 개발과 선호지역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득세와 양도세를 완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했다.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출산·고령화 대비책이 절실하고 상당한 재정도 쏟아야 한다”며 “대책 중 하나로 3~5세 영·유아에 대한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는 것 등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2%대 성장률과 2%대 물가상승률을 지속하기 위한 구조 개혁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익환 기자
사진=신경훈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