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무역 갈수록 줄어들자
설자리 좁아진 종합상사들
'빅5' 영업익 수년째 1조 밑돌아
종합상사들이 ‘상사’ 꼬리표를 떼고 속속 신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13년부터 미얀마 해상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스전 전경. 한경DB

종합상사들이 ‘상사’ 꼬리표를 떼고 속속 신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13년부터 미얀마 해상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스전 전경. 한경DB

종합상사라는 업(業)이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사라질 전망이다. 현대종합상사에 이어 LG상사(31,300 -0.32%)까지 ‘상사’라는 이름을 떼면 ‘수출입국’의 기치 아래 한국의 수출창구 역할을 해온 종합상사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급변하는 무역과 산업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적 정체된 종합상사
9일 무역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20,300 +0.50%), 삼성물산(138,000 -0.72%)(상사 부문), LG상사, SK네트웍스(5,550 +0.18%), 현대종합상사 등 국내 종합상사 ‘빅5’의 지난해 잠정 매출은 59조5191억원으로, 전년(66조1330억원) 대비 10.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9989억원에서 8841억원으로 줄었다.
저무는 종합상사 시대…"이젠 그룹 '新사업 돌격대'로 진화"

문제는 실적 부진의 원인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리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국내 ‘빅5’ 종합상사가 거둔 매출은 66조1330억원으로 2년 전에 비해 2조5000억원가량 감소했다. 종합상사 다섯 곳의 전체 영업이익도 수년째 1조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트레이딩 수요가 급감하면서 부진한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레이딩은 상사 본연의 기능으로 불린다. 고객사와 제조사 간 중개를 통해 제품을 대신 팔고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종합상사는 1975년 정부의 수출진흥정책에 따라 종합무역상사제도가 시행되면서 잇따라 설립됐다. 종합상사로 지정되면 세제·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1999년 당시 종합상사 수출이 국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에 달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주요 기업의 수출 역량이 높아지고, 기업들이 무역금융을 줄이면서 종합상사의 사세는 급격히 하락했다. 2009년엔 종합무역상사제도가 폐지됐다. 2019년 기준 종합상사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대에 불과하다.
신사업 ‘첨병’ 역할 맡아
종합상사들도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신시장·사업을 개척하는 ‘종합사업회사’로 탈바꿈하는 추세다. 최근 종합상사는 각 그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신사업의 ‘돌격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트레이딩과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리스크 관리 능력이야말로 신사업을 추진할 때 필요한 역량”이라고 밝혔다.

LG상사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니켈 채굴을 위한 광산 투자를 올해 1순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1순위로 꼽힌다. LG상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석탄 광산과 팜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지 네트워크도 탄탄하다. LG상사는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대규모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자회사인 판토스를 통한 물류사업도 계속 확대할 방침이다.

국내 종합상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액화천연가스(LNG) △식량 △부품소재 등을 중심으로 신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밸류체인을 확장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얀마에 일찌감치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13년부터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올 들어 전기차 구동모터코어와 함께 수소전기차 부품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는 국내 업체와 협력해 전기차 부품을 직접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 시즈오카현과 오카야마현 두 곳에서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를 전 세계 각지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 수소·전기차 분야에 진출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20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고속철 사업 등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한 해외 투자를 통해 몸집을 불리겠다는 복안도 세우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상사 분야를 과감하게 정리한 뒤 사업 주축을 차량·가전 등 렌털 분야로 완전히 바꿔버렸다. 2019년 기준 SK네트웍스 매출에서 트레이딩이 차지하는 비율은 32.4%에 불과하다.

삼성물산은 ‘빅5’ 종합상사 중 유일하게 화학, 철강, 에너지, 금속 등 트레이딩이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10월 탈석탄 선언을 계기로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2018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대규모 풍력·태양광 발전단지를 완공한 데 이어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고부가가치 사업과 신시장 개척을 통한 ‘선택과 집중’만이 종합상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